[한주를열며]정이 많은 국민 앞에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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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12) 남의 흉을 고발하고 비난하면 자신이 훌륭해지고 위대해지는 줄로 아는 졸장부들을 혐오하게 된다.

사색당파와 무수한 사화 (士禍) 들의 불행이 바로 이 이간질.비방.모함.중상모략 등으로 일어났다.

오늘날도 여야가 서로 사랑할 줄 모르고 헐뜯고, 상호 비난하고, 고발하고 그러니 국민의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그렇게 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이혼율의 급증이 그 영향이고, 기업들의 연속 무더기 부도들도 그 여파며 이웃간의 불신과 강도.살인 등이 살벌하게 일어나는 원인도 국민앞에 드러난 정치인들의 언행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받을 행동을 하려는 노력이 참 사랑이라 할 것이다.

우리 국민 생활의 상식은 이렇다.

이웃간에 서로 삿대질하며 고함치고 비방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이웃에게 호감가는 태도로 웃으면서 대화로 상하수도 문제며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을 해결하며 살려고 조심스레 신경쓰는 생활이다.

이웃의 약점을 비난하며 흉을 보면서는 그 동네에서 평화롭게 어울려 살기 불가능한게 민주 국민의 생활이다.

어느 날 독일의 프레데리크 대제 (大帝)가 베를린 시가를 지나가는데 벽에 누군가가 대제의 얼굴을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그려 찢지 못하게 높이 붙여놓았다.

시민들은 대제가 몹시 화를 내며 범인을 잡아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제는 잠시 그림을 쳐다보고는 상스러운 비방의 글도 함께 적혀 있는 것을 알고도 신하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모든 사람이 잘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그림을 좀 낮게 달아 놓아라. "

그리고 대제는 침착하게 가버림으로써 반대파들의 나쁜 의도와는 오히려 대조돼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제에 대해 감탄하는 마음으로 존경심을 다시금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모세의 십계명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 는 말은 살생은 물론 비방.모함.중상모략 등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판을 받은 수천년 전에 이미 하늘이 원치 않은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대통령선거를 향한 무리들의 설전에서 얼굴을 찡그릴 불쾌감을 느낀다.

불교 교리가 생각난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재판을 받을 때 세상에서 남의 흉을 보고 거짓말을 하고, 말만 하고 행동이 없는 사람은 혀를 뽑아버리는 벌을 받는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바른 말.고운 말을 쓰자고 가르치고 있는데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인 국회의원들의 언행은 가끔 초등학교 교육에도 미달되는 정도다.

정이 깃들이고 예의가 담긴 언어구사로 상대편을 납득케 하는 고등 교육자답기를 바란다.

국회의원들이 발언하는 말솜씨와 의도나 표정에서 국민들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읽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 손찌검과 주먹까지 불사하고, 던지고 부수고 하는 무례한 사람들은 우리 한 민족이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4.19 혁명으로 동상을 내리고 부수고 한 이승만 (李承晩) 전대통령의 주검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대통령으로 다시 모신 우리 평민들의 풍부하고 여유있는 정을 생각해본다.

MBC - TV가 요즈음 방영하는 공익광고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어린 아이의 얼굴이 흑백으로 화면을 크게 채우고 어른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지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다음에는 어른들이 서로를 위하는 좋은 말이 부드럽게 들리기 시작한다.

어린이의 표정이 밝아지고 점차 웃음으로 이어진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이 광고를 보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가.

국민의 인상을 일그러지게 하는 언동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국민의 얼굴을 환하게 펴주어 웃음진 생활을 하게 할 국회의원과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국가의 지도자들이라면 국민의 수준 높은 지적 감정을 잘 읽어 주기를 바란다.

이기정 [답십리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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