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대통령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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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조순 (趙淳) 후보 아들의 기자회견내용을 접하고 나서는 더욱 더 정치에 만정이 떨어졌다.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순씨 아들들이 지닌 신체적 고민은 주위에는커녕 부모형제에게도 털어놓기가 싫을 성질의 것이다.

그런 것을 자청해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만천하에 공개하다니…. 권력이 뭐길래, 대통령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과연 아버지라고 해서 아들에게 그런 희생까지도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다른 갈래의 회의에도 사로잡혔다.

정치적 경쟁이, 선거전이 흠집내기와 약점캐기의 경쟁으로만 흘러가는데 대해서는 정치인들 스스로도 불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정당에 무슨 이념이 있고 정책이 있는가.

그나마 하나같이 자신들을 중도보수당이라고 칭하고 있다.

명목상 정당은 여럿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보수정당Ⅰ, 보수정당Ⅱ, 보수정당Ⅲ 하는 식인 것이다.

그러니 후보의 차별성이란 기껏해야 고향.학교.경력.가족상황.얼굴모습.화술 등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엽말단적인 것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조순씨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신체적 비밀을 공개해야 했던 배경에는 이런 척박한 정치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조순씨라고 이런 정치현실에서 예외인가.

조순씨는 대선출마의사를 굳히면서 이회창 (李會昌) 후보를 "이름만 李씨지 3金과 다를바 없다" 고 비판한바 있다.

그러면 조순씨는 과연 어떤가.

현재로선 단정하기가 좀 이르지만 누군가가 그가 손잡은 측이나 연대하려는 측을 분석하면서 그 역시 "이름만 趙씨지 3金1李와 다를바 없다" 고 비판한들 별로 할 말이 없을 것같다.

각 후보진영이 병역문제나 색깔논쟁 이외에 각각 2탄, 3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듯이 가면 갈수록 폭로전과 흠집내기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다.

그 결과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만신창이가 돼 대통령에 취임하게 될 것이 뻔하다.

문자그대로 '상처뿐인 영광' 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이끌고나갈 다음 5년은 이제까지의 5년에 비해 과연 얼마나 나을 것인가.

요즘 이 점에 관해 걱정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비록 흠집내기와 약점캐기 경쟁식으로 흘러버렸긴 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이제부터는 적어도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감히 편법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아들의 병역을 면제받으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에 대한 도덕적 검증은 원칙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터무니없는 모략과 허위선전으로 흐르는 것을 엄히 경계해야 할 뿐이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선거가 있었지만 후보의 도덕적인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지난 날에는 독재대 반독재, 호남대 비호남과 같은 더 큰 쟁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TV토론회에서 한 대선후보는 토론자가 "정치성금에 대해서는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세금탈루가 아니냐" 고 따지자 "정치인들은 대부분 신고를 하지 않는다" 며 대수롭지 않게 답변했다.

물론 '성금' 이라는 뒷돈을 곧이곧대로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양 말하는 것은 참으로 놀랄 일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법과 도덕의 화신 (化身) 이기를 바란다.

법이 지켜지질 않고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일수록 그런 기대가 커진다.

최근 이회창후보 아들들의 병역문제가 큰 정치적 문제가 된 것도 병무행정에 그만큼 비리나 문제점이 많기 때문이다.

방식에는 문제가 있으나 대통령에게 지고지선 (至高至善) 을 요구하는 국민을 지나치다고 탓해선 안된다.

안 썩은데가 없다는 우리 사회지만 도덕적 요구가 그토록 높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은 책상위에 '대통령' 을 써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도덕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대통령이 뭐길래' 하는 물음을 던지며 살아가야 한다.

<유승삼 중앙m&b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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