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통화 스와프 … 임태희·다케시타 와타루 두 사람의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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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평소 신중한 화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25일엔 “단언한다”는 표현을 두 차례나 썼다. 일본은행들이 3월 결산을 앞두고 한국에 대한 대출을 줄이거나 자금을 회수할 것이란 이른바 ‘일본발 3월 위기설’을 부인하면서다. 그는 “위기설이 위기로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임 의장의 확신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여권의 복수 관계자는 “임 의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의 지원 속에 일본 금융 당국과 은밀하게 접촉을 벌여온 여권의 막후 채널”이라며 “누구보다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 것”이라고 전했다. 임 의장의 파트너는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 재무성 부상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양국 간 원-엔 스와프(교환) 한도(당시 30억 달러)를 늘리는 게 현안이던 지난해 11월 중순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대폭 확대 요청에 “70억 달러 정도까지만 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임 의장은 그 무렵 한·일의원 연맹 경제과학위원장 자격으로 방일, 다케시타 부상을 만났다.

초면이었지만 얘기는 잘 풀렸다고 한다. 워낙 인연이 두텁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한·일 사이의 오랜 막후 채널이었던 ‘권익현-세지마 류조(瀨島龍三) 라인’과 관련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인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는 임 의장의 장인이다. 권 전 대표는 종종 사위에게 ‘협상 비사(秘史)’를 들려줬다고 한다. “88올림픽 당시 야쿠자들이 (올림픽을) 관람하러 오고 싶어도 현금박스 통관 문제 때문에 못 온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과 얘기해서 풀었다”는 식이었다.


다케시타 부상은 정·재계의 막후 실력자인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과 연결된다. 형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를 통해서다. 다케시타 전 총리가 대장성 대신 시절인 1980년대 초 권 전 대표를 처음 만나 “세지마 선생한테 소개 잘 받았습니다. 전 세지마 학교(세지마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칭)의 학생”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세지마 전 회장과 다케시타 전 총리는 권 전 대표와 함께 83년 한·일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임 의장이 다케시타 부상을 만난 이후 주변에 “장인이 권익현 전 대표라고 얘기하니 다케시타 부상이 ‘잘 안다’며 반기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회동한 지 한 달이 안 돼 임 의장은 다케시타 부상 측으로부터 “요구대로 (스와프 한도를)늘렸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가 300억 달러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임 의장과 다케시타 부상 라인은 이후에도 계속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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