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장승길 북한 대사 미국 도착한듯…CIA서 이동절차 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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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안희창 기자.워싱턴 = 이재학.파리 = 배명복 특파원]22일 카이로와 파리에서 동시에 잠적한 북한의 장승길 (49) 이집트주재대사와 형인 장승호 (51) 프랑스주재 북한총대표부 참사관은 미국에 도착해 은신한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정부소식통은 "장대사는 오래전부터 북한체제를 이탈할 결심을 굳히고 미국측에 이같은 뜻을 전달해 온 것으로 안다" 며 "22일 카이로의 미국대사관에 가서 망명절차를 밟은 후 23일 제3국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미국측은 장대사의 망명타진에 대해 정치적 의도 없이 인도적 차원에서만 다루겠다는 입장을 관련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장대사 부부가 이집트를 떠나 제3국에 체류중" 이라고 공식 확인한 뒤 "프랑스에 있던 장대사의 친형 장승호참사관도 프랑스를 떠나 제3국에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파리의 한 외교소식통은 "장대사 부부는 지난 22일 공관을 빠져나와 카이로 시내 미국대사관으로 직행, 거기서 하룻밤을 지낸 뒤 이튿날 미국 정보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경유지인 아프리카 어떤 나라로 이동해 미국 당국의 보호 아래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소식통은 "형인 장승호참사관 가족도 지난 22일 육로로 프랑스를 빠져나갔으며 현재 미국 당국의 보호 아래 유럽내 어떤 나라를 거쳐 미국으로 향했다" 고 덧붙였다.

미국측이 이들의 신병을 장악해 우리 정부도 처음에는 정확한 망명경위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장대사 일행의 망명의사를 접수한 미국 중앙정보국 (CIA) 의 망명 주선이 있었던 것으로 정부와 파리의 외교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파리 소식통은 "장대사가 북한의 대 (對) 중동 미사일수출에 관해 상당한 정보를 가진 것으로 추정돼 미국과 이스라엘이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소식통은 "장대사는 한.이집트간 수교저지 실패와 아들의 잠적등에 따른 문책을 염려하고, 장참사관도 저조한 외화벌이 실적으로 고민하다 북한체제 이탈을 고려해 온 것으로 안다" 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보당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도 장대사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 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은 25일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의 미국 망명 보도와 관련, 망명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침묵을 지키는 것" 이라며 논평을 회피했으나 한국 언론의 망명보도를 정면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은 25일 낮 정례 브리핑에서 카이로 주재 북한대사등이 미국에 망명의사를 밝혀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에 관해선 전혀 할 말이 없다" 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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