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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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황정옥·최명헌 기자

아이는 배우가 되는 꿈을 꿨고, 부모는 아이에게 의과대학 진학을 강요했다. 아이가 연극 발표회에 참가하자 이를 안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와 아이와 심하게 다퉜다. 아버지는 가문의 전통과 사회적 명성을 내세워 자신처럼 의사가 돼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아이는 그날 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자살을 택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다. 자녀들이 자신을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키운 부모에게 복수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심지어 패륜도 서슴지 않는다. 교육전문가들은 “부모가 사랑으로 포장했지만 자녀들을 통제하고 억압한 탓”이라며 “부모와 자녀 간의 교감이 약”이라고 진단했다.

1 서정순(52·여·가명)씨는 매일 자신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는 딸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문자는 ‘내 인생을 망친 엄마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름 끼치는 내용이다. 딸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했다. 서씨는 지극 정성으로 딸을 수재로 키웠다. 그러나 딸은 조울증을 겪는 부진아로 퇴보했다.

이에 대해 『복수 당하는 부모 존경받는 부모』의 저자 전성수 부천대 교수(유아교육)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부모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 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자녀가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도 이는 부모의 행복이지, 자녀의 행복은 아니란 설명이다.

전 교수는 조기 유학으로 남겨진 기러기 아빠나 자녀 학원비를 벌려고 파출부 일을 나가는 엄마가 우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희생을 자녀의 학업 성취와 연결시키려는 언행’을 꼽았다. 예를 들어 “너 때문에 (부모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거니까 넌 공부만 열심히 해라”는 식이다. 말의 초점이 부모의 기대에 맞춰져 있다. 이는 아이에게 부모의 욕구에 맞춰 공부와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부정적 정서를 심어 준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자녀가 학업의 열정이 있다면 “(부모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게”라며 초점을 아이에게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모가 유학·결혼·사업 자금까지 다 대주고도 훗날 ‘마마보이’ 자녀에게 버림받는 이유도, 최근 미국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높은 이유도 “타율에 의해 만들어진 우등생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녀의 소질을 발견해 키워 주기보다 좋은 직업을 기준으로 그에 맞춰 소질을 키워 주는 소위 ‘거꾸로 교육’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 김지영(47·여·가명) 교수는 유학 당시 세 살 된 아들에게 조기 영어교육을 시켰다. 아들이 초등생 땐 각종 선행학습 학원을 보내고 조기 영재교육도 열심히 했다. 하루는 아들이 친구가 자신의 눈과 마주쳐 기분이 나쁘다며 수업 중 친구의 얼굴을 연필로 찔렀다. 아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이후 부모에 대한 공격성도 커져갔다. 아들은 지난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언어장애 판정을 받고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내 아이의 공부를 망치는 엄마 마음습관』을 쓴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은 “아이들마다 서로 다른 심신 발달의 차이를 무시한 채 밀어붙인 선행학습이 아이의 뇌에 과부하를 주어 정서 장애를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지향적, 부모 주도적, 성적 지향적, 정보 의존적인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잘못된 의식이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에게 뜀박질을 요구하고, 아이가 못 따라가면 부모가 끌고 간다는 것이다. 또 학습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부모가 입시정보에 휩쓸려 깊은 교육철학이 없다는 설명이다.

박 소장은 “자녀가 “학원 안 가고 혼자 해볼게”라고 말할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때 부모가 “학원 다니기 싫어서 그러지” “학원 가도 안 되는데 그마저도 안 하면 어떻게 해”라며 아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실패를 해도 ‘거봐라 엄마 말 안 듣더니’라며 비난해선 안 된다. 실패를 칭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부모의 실패에 대한 강박증이 빨리빨리 엘리트 코스를 강요해 아이에게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과 실패에 대한 면역을 방해한다”고 덧붙였다.

3 소년원을 드나들며 청소년기를 보낸 임석훈(22·가명)씨는 술에 취할 때마다 부모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부모의 잘못된 말과 행동이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심어줘 자신을 엇나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임씨는 “부모의 과잉 보호가 내가 스스로 판단할 힘을 빼앗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왜 맞고 돌아다녀, 때려주고 와!’라는 부모의 말에 반발심을 느꼈다. 어릴 적 이 말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당연시 여기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부모의 언행은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임씨가 학교에서 야단을 맞거나 친구와 싸울 때마다 부모가 교사를 찾아가 다툼을 벌였다. 그는 “이후 교사의 권위에 대한 어려움은 물론 부모에 대한 존경심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임씨는 그에 따른 학교 부적응과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수차례 전학을 반복했다.

전 교수는 “부모의 말과 행동 속에 자녀의 복수심을 자극하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부모조차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소장은 부모와 자녀의 ‘공감’ 대화를 강조했다. 부모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으로 자녀 이야기를 경청할 것, 아이의 감정에 공감할 것, 설득을 염두에 두지 말고 아이와의 대화 자체를 즐길 것 등을 제안했다. 그는 “설득하거나 편애하기 위해 대화하면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만 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경청해 주면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수정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정식 기자
사진= 황정옥·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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