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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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 나라에도 병역 의무는 있다.

1년간이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나 개인의 소신에 따라 집총 (執銃) 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우리의 공익근무처럼 같은 기간 봉사활동에 종사하게 된다.

그나마의 조직활동조차 거부하는 경우는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된다.

이 감옥이란 규율이 좀 엄격한 기숙사 정도로, 운동이나 독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감옥생활을 할부제로 하는 방법도 있어 대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높다.

겨울이 긴 그 나라에서 학생들은 겨울방학마다 이 감옥에 들어가 석달씩 수용생활을 하고 나오는 것이다.

4년동안 겨울을 여기서 지내면 병역이 끝난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취하기 위해 현역복무를 택한다고 한다.

20여년전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서울에 머무르고 있던 스웨덴 청년 레이프에게서 들은 스웨덴 얘기다.

레이프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선원이 됐다.

선원노릇으로도 병역을 대신할 수 있다.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식으로 세상을 공부하던 레이프는 어느날 부산에 입항했을 때 충동적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한국을 공부하기로. 한국의 대부분 남자들은 군대에 많은 시간을 바친다.

그러나 "×퉁소를 불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 는 군대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시간때우기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와 경제가 발달할수록 이 시간낭비의 의미는 심각해진다.

여러 전문직에서 젊은 시절 연마의 기회를 몇년간 잃는 것은 개인의 손실뿐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굴레가 되고 있다.

레이프에게 스웨덴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스웨덴은 꿈속처럼 머나먼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보다 합리적인 병역제도를 가진 모든 나라가 우리의 경쟁상대가 돼 있다.

세계가 좁아지기도 했고 우리가 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병역' 관념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많은 국민이 병역에 대해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병역제도가 그리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지도자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어떤 해명으로도 잘 삭여지지 않는 것은 이 피해의식이 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의 면제가 정당하느냐 하는 시비보다 중요한 것은 복무하는 사람들이 그 복무에서 보람을 느끼도록 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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