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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가 국경 못 건너면 군인이 건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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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맞는가 보다. 역사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니 하는 말이다. 세계가 다시 보호무역의 망령에 휩싸이고 있다. 경제위기 때 높이 친 보호무역 울타리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대공황 때가 꼭 그랬다.

1930년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세계경제를 빙하기로 돌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공산품에 최고 400%의 관세를 물리는 내용이다. 다른 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앞다퉈 관세를 올리면서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내가 수입을 막으니 수출을 하는 이웃 나라가 가난해졌다. 가난해진 이웃 나라가 수입을 할 수 없으니 이번에는 내가 수출을 못해 곤궁해졌다. 이렇게 가난은 전염병처럼 전 세계로 퍼졌다. 대공황이 길고 고통스러워진 이유다.

흘러간 영화로만 여겨졌던 이런 장면이 지금 되풀이될 조짐이다. ‘담대한 희망’을 제시하며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초반부터 ‘대담한 불안’을 연출하고 있다. 그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하이어 아메리칸(Hire American)’ 같은 정책으로 기울면서 보호무역의 불길이 전 세계로 번질 태세다.

하지만 걱정만 할 수는 없다. 이런 때일수록 희망을 찾아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살린 선각자는 있게 마련이다. 대공황의 고통이 뼛속 깊이 파고들던 때 혈혈단신으로 자유무역의 씨앗을 뿌린 코델 헐(1871~1955)이 그렇다. 그는 16년 민주당 하원의원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분석하다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물자가 국경을 건너지 못하면 군인이 건넌다’.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보호무역의 광풍에 맞서 ‘무역 장벽이 낮아야 함께 살찌고 평화도 유지된다’는 신념을 설파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의 주장은 울림이 크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에 눈먼 의원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헐은 이단아 취급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1932년 민주당 후보인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모두가 살려면 이 길밖에 없다”고 매달렸다.

루스벨트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33년에 국무장관에 임명된 헐은 이듬해 상호무역협정법(The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을 제정했다. 관세를 낮춰 자유무역을 하자는 내용이다. 이 결과 미국은 34~44년까지 27개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상대국의 관세율은 이 기간 동안 평균 44% 내려갔다. 수출은 60%나 늘었다. 물론 이 법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자유무역의 싹은 이때부터 움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룬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은 상호무역협정법의 연장선이었다. GATT는 이후에 세계무역기구(WTO)로 이어졌다. 자유무역의 초석은 이렇게 한겨울 혹한을 뚫고 돋아난 새순처럼 보호무역의 파도가 거셀 때 세워진 것이다.

이쯤 되면 해답이 보이지 않는가. 오바마만 쳐다보지 말고 한국의 헐이 되자는 것이다. 보호무역의 유혹이 세계를 휩쓸 때 우리가 자유무역의 정신을 확실히 실천하는 용기를 보이자는 것이다. 마침 한국은 영국·브라질과 함께 4월에 열릴 G20 회의의 의장국이다. 이 기회에 한국이 자유무역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법률을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는 건 어떨까.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빨리 비준하는 것도 필수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헐이 만든 상호무역협정법을 “신념을 지킨 한 정치가에게 보내는 존경의 기념물”(『대공황의 세계』)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통상 변방국에 머물던 한국이 자유무역의 중심국으로 뛰어오를 ‘존경의 기념물’을 만들 절호의 기회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