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는 누구인가’ 물으며 떠난 김수환 추기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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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02면

“나는 누구인가? 80을 넘긴 한 생을 산 내가 새삼스럽게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러 남다른 삶을 살게 했는지 나름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다.”

20일 영면한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7월 거처를 혜화동 주교관에서 강남 성모병원으로 옮기면서 이젠 마지막이 된 육필 원고(아래 사진)를 남겨 놨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추기경이 표현했듯 생을 살 만큼 산 여든 넘은 노인이 던지기에 여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묻는 윤리적이며 실존적인 질문이다. 이미 삶의 노트에 자기 기록을 가득 채운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추기경은 삶의 마지막 장에서 이 질문을 던졌다.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병상에서조차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까. 육필 원고엔 이런 글이 이어진다.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내가 이렇게 알려진 이유는 내가 이런 목표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에게도 야심도 있고,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도 있어 나 스스로에게 탓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나름대로 꿈이 있었다. 그것은 소박한 것이었다.…” 김 추기경은 야심과 명예욕을 토로했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기보다 ‘저렇게 순정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 추기경은 여든일곱의 노년에 이르러서도 풋풋함과 어린애 같은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가 선종했을 때 우리는 그의 주름에서 고난과 희생을 떠올렸지만 김 추기경에게선 안식과 미소, 일부 쾌활함마저 느꼈을 정도다. 완고함은 없었다. 이런 생명성을 유지한 힘은 ‘나는 누구인가’를 쉬지 않고 질문하는 데서 나왔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성경 시편 23편 1절)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라는 답변이 나왔다. 목자 앞의 어린 양이 누리는 충족감과 따뜻한 이타주의가 답변이었던 것이다. 시편 구절과 사목 표어는 용인 성직자 묘역에 묻힌 추기경의 묘비에 새겨졌다. 김 추기경의 충족감과 이타주의는 종교와 이념, 정파와 세월을 넘어섰다.

그랬기에 진보신당 당원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까지 당원 게시판에다 “여러분은 김 추기경만큼 살 자신 있어요? 솔직히 저는 그분만큼 살 자신 없습니다”라고 썼을 것이다. 이제 원로 없는 나라, 선한 권위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걱정이 많다. 이제 각 개인이 그런 걱정 대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물음으로 스스로 선한 권위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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