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강상중 著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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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팔레스타인계 미국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난 78년 출판한 '오리엔탈리즘' 은 20세기의 마지막 20년간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논제의 하나인 탈식민주의 담론의 기원을 이룬다.

일찍이 동양학, 또는 동양 취미로 이해됐던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용어는 사이드에 의해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사고양식" 으로서 재정의됐다.

서양의 지적.문화적 엘리트들에 의해 생산된 오리엔탈리즘의 담론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권위적 사고체계로 기능해 왔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 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영국.프랑스.미국 등 서양과 중동 제국에 국한돼 있으나, 여기에 제시된 모델은 얼마든지 범위를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다.

즉 비서양 국가이면서 재빨리 근대적 제국주의의 길에 들어선 일본 역시 서구의 제국주의를 이식하면서 한국 등에 대한 식민정책에 서구 오리엔탈리즘을 원용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식민지 이집트에 부임한 영국의 크로머경은 동양인은 부정확한 사고의 소유주이자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며 매사에 둔감한 인종이라는 그의 편견을 '현대 이집트' 에 기록했는데, 유력한 정치가이자 와세다 (早稻田) 대학 설립자인 오오쿠마 시게노부 (大외重信) 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대일본문명협회에서 이 책을 '최근애급' (最近埃及) 으로 번역하면서 "크로머경의 이집트 경영은 한국에서의 보호정치를 수행하는데 참고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여"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에게 부쳤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재일교포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 (도쿄대) 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는 사이드의 이론을 바탕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정책에 동원된 식민주의적 담론의 허구성과 자기모순을 해부한 값진 시도로 평가된다 (이산刊) .베버와 푸코의 반근대.반권력의 담론을 사이드와 접목시켜, 일본에서 재생산된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주의와의 결합양상을 분석.비판한 3.4장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강교수는 탈아론 (脫亞論) 의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 '식민정책학' 의 창시자 니토베 이나조 (新渡戶稻造) 등의 아시아에 관한 언술이 서구인들의 차별적인 아시아관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경제사학자 후쿠다 도쿠조 (福田德三) , 동양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 (白鳥庫吉) 등의 동양학연구가 한국에서의 일제 지배권력을 추인해 온 과정을 면밀하게 파헤치고, 이를 통해 지식과 권력의 결합이라고 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고발한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오리엔탈리즘 비판과 같은 탈식민주의적 사고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 또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 구조와 같은 문제의 심층에 근접하는데 매우 유효한 시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점에 있다.

그러나▶1.2장에서 다룬 베버.푸코.월러스틴 등의 근대 비판에 관한 언술이 자칫 새로운 '중심' 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지나치게 '위압적이고 지배적' 이라는 점▶서구의 중동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는 그 성격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중동의 관계를 토대로 한 사이드의 이론을 적절한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면 수용하고 있다는 점▶오늘날 일본의 지적.문화적 담론에 잔존하는 현재진행형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교수 외에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仁) 등이 주도하고 있는 '일본판 오리엔탈리즘' 에 관한 논의는 일본 지성계의 자기비판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윤상인 교수〈한양대.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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