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부터 넘겨라" 이라크, 미국에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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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보름 앞으로 다가온 이라크 주권이양이 순조롭지 않다. 미국과 이라크 임시정부의 팽팽한 샅바싸움 탓이다. 미국은 오는 30일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해체 전에 이라크에서 최대한 이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임정의 생각은 다르다. 더구나 치안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후세인부터 넘겨라=임시정부는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포함한 전쟁포로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야드 알라위 총리 지명자는 14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2주일 후 후세인과 다른 모든 구금자를 새 정부에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군 측과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미리 언론에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부정적이다. 미국 관리들은 주권이양 이후에도 연합군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판단되는 최고 5000명의 죄수를 계속 구금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 후세인을 포함해 구금 중인 전 정권의 고위관리와 저항세력을 치안.행정능력이 아직 부족한 임정에 그냥 넘겨주기는 불안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5일 "후세인을 '적절한 시점'에 이라크 당국에 넘겨 재판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 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후세인의 신병인도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의 댄 세너 대변인도 후세인이 전쟁포로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이라크 임시정부에 권력이 이양되는 30일 이전에 넘겨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세인과 전쟁포로의 관할권에 대한 논란은 최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이들의 지위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을 내놓아 더욱 주목받고 있다. ICRC는 후세인을 포함한 전쟁포로들이 군정과 점령이 끝나기 이전 기소되지 않을 경우 석방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후세인 등 고위관리들의 소재와 전쟁포로의 정확한 숫자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미국이 임정과 ICRC의 요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또 연합군이 이들을 정식 기소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미군이 30일 이들을 석방하고 즉시 임정 당국이 재체포하는 식의 타협안도 제기되고 있다.

◇불거지는 이견들=후세인 인도 문제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임시정부는 이미 포로 학대로 악명높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을 철거하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

임정은 또 현재 CPA가 사용하고 있는 대통령궁과 기타 건물들에 대해 일부 혹은 전체 반납을 요구하고 있다. 후세인의 사무실이었던 공화국궁을 직원 3000명 규모의 세계 최대 미 대사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미국 계획에 대해서도 이라크는 부정적이다. 가지 알야위르 이라크 임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과 같은 행위"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임정 당국은 "최소한 임대료를 지불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또 다국적군 외에도 수천명에 달하는 미국인 사업가와 근로자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알라위 총리 지명자는 단호히 거절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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