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진가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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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현


다큐멘터리 사진가 차진현(38). 그는 거리를 쏘다니며 길 위에 방치된 역사적 소재들을 렌즈 속에 담는다. 이 땅의 환경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또 그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 지 샅샅이 살피고 다니는 작가다. 때로는 날카로운 감시자의 시선으로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감성적인 시선으로 길과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기록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명성이 높은 이상일씨는 이런 차진현 작가를 두고 “힘든 사진의 여행길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걸어갈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런 그가 요즘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사진을 제작해주고 있다. 거리를 탐험하기도 바쁜 이 남자가 갑자기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무엇일까.

Q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이 작품 소재를 위안부 할머니들로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입니다. 길을 걸으며 그 위로 드러나 있거나 또는 숨어있는 사연들을 관찰하고 발굴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 또한 우리들의 길 위에 놓인 중요한 소재 아니겠습니까. 할머니들의 사연에 얽혀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크고요. 작업을 하면서 할머니들이 참으로 연로하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 달 전에 촬영을 마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서둘러야죠.


Q 길 위의 역사들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주로 어떤 부분에 집중하시는지요.
A 한국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소재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정체성을 사진으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거든요. 그리고 아름다운 감성사진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작업이 더욱 무르익으면 두 가지 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겠지요.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났는데 막상 가보면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한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길’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운 산책로가 공업도로로 뒤바뀌고 산토끼가 뛰어놀던 풀밭에 시멘트가 쏟아지는 것이죠.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두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Q 다큐멘터리와 예술 사진의 경계를 넘나든다니 어쩐지 어렵게 들리는데요.


A 제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한 사유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찍은 사진을 보면 거의 검은 배경입니다. 할머니들의 개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내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이 가지는 개별적 존재감이 상실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지요.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바닥의 구분을 없애봤습니다. 검은 공간은 그분들의 삶에 대한 애환을 뜻합니다. 한곳에 발을 딛고 서있지 못하시고 떠 있는 느낌은 그분들이 평생 겪어야만 했던 정신을 담고 있지요.

Q 사진작업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일까요.
A 잘 팔리지 않는 사진에 대한 문제겠죠.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 작가의 작품도 정말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술계는 그러한 작품을 수용하지 않고 요즘 현실에 맞추어 작품가치가 아닌 상품가치만을 우선시 해 작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정말 진정성을 잃지 않고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힘든 환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꿋꿋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층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람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모델들을 섭외하는 일이 가장 힘듭니다. 섭외를 해서 그들이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도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고요. 특정 장소를 수없이 답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다른 생각없이 끝까지 매달려야 해요. 결국 사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지를 꺾지않고 계속 진행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제 다큐멘터리 작업은 위안부 할머니들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 ‘역사에 선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리의 근대사와 현대사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을 찾아 계속해서 진행할 것입니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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