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파일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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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상 (李箱) 은 소설 '날개' 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렇게 독백하게 함으로써 비상 (飛翔) 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상징화 했지만 하늘을 날고자 하는 것은 태초부터 인류의 꿈이었다.

그 꿈은 이미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구체화돼 나타난다.

미노스왕의 노여움을 사 미로 (迷路)에 갇히게 된 아테네의 왕족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부자 (父子) 의 이야기다.

이들 부자는 새털로 두 쌍의 날개를 만들어 서로의 어깨에 붙인 다음 몇차례의 비행연습을 거쳐 마침내 미로 위를 솟구쳐 오른다.

지중해 푸른 물결위를 날면서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더 이상 높이 날지는 말 것을 충고하지만 기쁨과 자만심에 들떠 있던 이카로스는 태양에 좀 더 접근했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추락하고 만다.

이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넓은 천으로 몸을 감싸거나 새의 날개털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가슴에 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따위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부러워했던 것은 조종사들이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일이란 로맨틱하고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폭풍우와 어둠 등 거대한 자연과 맞싸워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조종사며 소설가였던 생텍쥐페리도 하늘과 비행을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조종사의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지' 를 누누이 강조했다.

그랬으면서도 그는 2차 세계대전말기인 44년 7월31일 무모하게 출격했다가 행방불명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종사였던 안창남 (安昌男) 역시 비행중의 사고로 사망했다.

지금에 와서야 하늘을 사랑하고 비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종석에 앉는 파일럿들은 별로 없겠지만 초창기에 비해 여건은 더욱 까다로워졌고, 위험도 또한 더욱 높아졌다.

영국 항공기술전문지의 착륙전 비행장 인근 추락사고원인에 대한 통계를 보면 조종사실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번 괌 참사에서도 조종사의 실수 여부가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늘을 나는 것이 이젠 낭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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