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추락 참사]구조 앞장선 구티에레스 괌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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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칼 구티에레스 (55)괌지사는 5일 새벽부터 이날은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평소 들을 수 없던 비행기 엔진의 굉음이 그를 새벽잠에서 깨웠다.

잠을 설친 그는 집밖으로 나오면서 니미츠힐의 숲쪽 방향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비행기 추락사고임을 알았다.

집에서 사고현장까지는 차량으로 6분 거리. 그는 정신없이 차를 몰아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밤인데다 지형이 험해 현장 접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협곡 밑으로 내려선 구티에레스 지사의 발걸음은 생존자들이 내는 비명과 "살려달라" 는 외침에 더욱 빨라졌다.

처음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때 생존자를 한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빛 속에 비춰진 검게 그을리고 절단된 시체의 처참한 모습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아비규환같은 사고현장에서 구티에레스 지사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불길 속에서 오른쪽 다리에 복잡골절상과 함께 양팔에 심한 화상을 입은채 고통으로 신음하는 조종사 배리 스몰 (47.뉴질랜드 국적) 이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급한대로 재킷을 벗어주고 안심시킨 뒤 연기에 휩싸인 동체 속에서 일본인 소녀 마쓰다 리카 (11) 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동체의 불길이 거세어지면서 생사가 불분명한 마쓰다의 한국인 어머니는 불길 속에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고현장 주변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구티에레스 지사와 구조대원들은 동이 틀 때까지 모두 32명의 생존자를 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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