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사분규 10년만에 최저 …알고보니 특별격려금 지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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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돈으로 산 노사평화' . 예년과 달리 별다른 갈등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올해 노사협상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진단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5일 현재 60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해 46건이 타결되고 14건이 진행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87년 이후 가장 낮은 노동쟁의 발생 수치다.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도 22만7천6백49일로 지난해에 비해 67%나 줄었고 분규 참가 근로자수도 4만3백11명으로 41% 감소했다.

노동법 개정에 따라 새로 짜인 틀 안에서 노사 양측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올해 노사협상이 이처럼 안정세를 보인 것은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워낙 두터워 노조측이 파업등 강경 분위기로 이끌기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올해 임.단협의 내용과 성격을 자세히 뜯어보면 우리 노사관계의 미래가 장밋빛 색채만 띠고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올해 평균 임금 상승률이 통상임금 기준 4.2% 인상에 그쳐 지난해 (7.7%)에 비해 3.5%포인트나 낮아졌다지만 그 이면엔 대다수 기업들이 임금인상분을 넘어서는 특별격려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무분규 타결을 축하하는 뜻에서 지급했다는 격려금 규모가 통상임금의 3백%에 이르는등 임금 인상분을 크게 웃도는 격려금은 파업 발생을 막기 위한 '당근' 이란 인상이 짙다.

실제 상당수 기업들은 격려금을 지급하면서 '연말까지 무분규' 를 조건으로 달기도 했다.

노조 역시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파업을 강행하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양보해주고 대신 실익을 챙기는 노선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경총이 올 노사관계의 안정기조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회복되면 또다시 분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지금의 노사평화가 격려금등을 통한 미봉책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경제난으로 본격 거론을 자제했던 노조 전임자 급여.무노동 무임금.정리해고제등 갈등 요인이 내년 단체협약 경신교섭에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신노동법 시행이후 생산시설 점거나 폭력행위.불법 파업이 사라진 평화적 쟁의행위의 관행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처럼 싹트고 있는 노사협력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급한 불 끄고 보기' 식의 방책보다 근로자의 후생복지 강화등을 통해 노사협력을 중시하는 근본적 의식개혁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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