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함정 서해 첫 교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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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여기는 백두산 하나."

19일 오전 9시 정각. 연평도 1구역(연평도 서쪽 4마일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해군함정 참수리 328호의 무전기가 울렸다. 북한 경비정(백두산 하나)이 참수리 328호(한라산 하나)를 호출하는 소리였다.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감명도 다섯."

남측 함정의 응답이 156.8MHz의 주파수를 타고 흘러갔다. 1953년 정전협정 이래 남북 함정 사이에 이뤄진 첫 공식 통신이다. '감명도 다섯'은 무전 상태가 가장 좋다는 뜻이다. 1분간의 통신 교환 후 남북 함정은 동시에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접근했다. 2마일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양측 함정은 불빛 신호를 보냈다.

9시8분 양측 함정은 다시 다가서기 시작했다. 참수리호가 십자 표시가 들어간 4번 깃발을 올렸다. '우리는 적대행위를 할 의도가 없다'는 의미다. 참수리호는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숫자 9기 올렸는지 통보 바람"이라며 무전을 쳤다. 직후 북한 경비정에서 9번 깃발이 올라왔다. '귀측의 신호를 수신, 이해했다'였다. 이 사이 1.6㎞ 떨어져 있었던 남북 함정은 800m 거리까지 접근했다.

참수리호에 장착된 40㎜ 함포의 유효 사정거리는 4㎞다. 2분간 이렇게 남북 함정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전과 시각신호를 나눴다. 9시11분 양측 함정은 "본래 위치로 이동하자" "모든 통신 종료하고 원래 위치로 기동하자"는 무전을 교환하며 시험통신을 마무리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13분까지 연평도.백령도.소청도 해역 등 서해 다섯 구역에서 남북 해군 함정들이 무선 교신에 성공했다. 연평도 1구역과 함께 소청도 3구역 해상에서도 남북 함정 간의 무선통신과 근접 시각신호 교환이 이뤄졌다.

동시에 남북 해군 당국은 이날 오전 9시 서해지구 통신선로(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구간 통신선로)를 통해 가상 불법 조업선 정보를 교환했다. 북측은 발신 '서해해상정황종합실', 수신 '남측 2함대사령부'라고 적힌 팩스 통지문을 통해 한 장짜리 '비법 어선 자료'를 해군 당국에 보내 왔다.

남측 해군도 '북측 해군 서해함대사령관' 앞으로 '남측 해군 제2함대사령관'이 보내는 불법 조업어선 자료를 팩스로 보냈다. 이 내용은 모두 시험통신을 위한 가상 상황이었다. 남북은 이날 시험통신을 시작으로 15일부터 서해 충돌을 막기 위한 무선통신.시각신호 체제를 공식 운영한다.

연평도=공동취재단.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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