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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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주가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은 대개 힘이 든다.

'월요병' 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니 월요일은 많은 이들에게 그리 편하고 의욕이 넘치는 날이라고 하기엔 좀 어색하리라. 아침부터 찌는 듯한 무더위로 인해 콧등에 땀이 맺히는 대구의 여름은 월요일 아침을 더욱 무덥게 했다.

그래서 버스기사 아저씨가 설치한 선풍기 바람에 신경쓰며 이어폰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버스를 갈아 타기 위해 내려 우유를 사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찾았다.

그런데 지갑이 없었다.

아무리 가방을 위에서 밑으로 훑어보고 뒤져봐도 분명히 있어야 할 지갑이 없었다.

벌써 두번째구나 하는 생각이 실망반 자책반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훔쳐간 이도 나쁘지만 잘 관리하지 못한 내게도 책임이 있다면서 화가 난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현금과 상품권.카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자꾸 잃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이젠 버스를 탈 때는 꼭 가방을 움켜 쥐고 사람들을 믿지 말고 감시 (?

)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자 자꾸만 그 소매치기가 미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 아직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이 말해주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밝게 웃으며 지갑을 건네는 아가씨는 카드분실 신고는 했느냐면서 자기도 부산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곤혹스러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현금이나 상품권은 이미 다 털리고 없었지만 정든 지갑과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는 양심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감사의 뜻으로 사들고 간 음료를 건네면서 아직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간직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다.

밤에 깊은 산을 넘어갈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짐승이나 귀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했다.

옛 어른들의 뼈있는 농담이 생각나는 하루였지만 각박해진 세상속에 그래도 아직은 양심이 살아있는 것같아 다행이었다.

정인숙 〈대구시북구복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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