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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정책도구 삼은 미국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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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폴레옹이 1804년에,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1848년에 각각 황제가 된 것을 두고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순서만 바꿔 이 상황을 재현했다. 몇년 전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희극의 뒤를 이은 비극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문을 정책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최근 언론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백악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사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봐 우려한다. 실제 그들이 통제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론 미국 사법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고문을 명령.위임.용인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변호인단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전쟁 범죄를 짓고도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했다. 자문 변호인단은 "부시 대통령은 고문을 금지하는 국제법이나 미국법에 의해 제재받지 않으며 그의 권한에 따라 고문을 행한 미국인을 미 사법당국이 고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견해는 국가 안보가 미국법과 국제 조약보다 우위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는 제네바 협정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미국이 어떻게 최고의 규범을 무시하고 짓밟는지를 알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체포하고, 비밀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는 데 국제법과 군 규정이 방해가 된다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들은 이런 장애물들을 없애고 싶어했다. 이는 나치 독일에서 대량학살을 지휘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법적.행정적 장애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불평했던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미 정부 고위 관리들은 그동안 이 불행한 수감자들을 어떻게 다룰지(얼마 동안, 어떤 자세로, 어떻게 고통을 줄지)만 계속 생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아차, 이들은 이제서야 일이 잘못되거나 이 때문에 누군가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대통령은 5월 24일 "일부 미군들이 … 우리의 가치를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리들은 아부 그라이브 스캔들이 "몇몇 촌뜨기들"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미군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대부분 이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계획하고 전개했다. 미 행정부는 왜 저항이 벌어지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자 주민들을 무작위로 체포하고 신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부도덕할 뿐 아니라 쓸모없고 비이성적이었다. 고문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정보 전문가나 특수전 전문가 사이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당신이 어떤 정보를 가진 주요 인물을 붙잡아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말이 사실일까? 아니면 단지 고문을 피하기 위해 눈치껏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해준 것일까? 설혹 사실을 말했더라도 그것이 유용할지는 의문이다. 모든 저항 세력은 점조직으로 이뤄져 개인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데다 한명이 잡히면 모두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이라크인의 대부분은 우연히 또는 미군의 체포대상자와 관계가 있거나 이름이 비슷해 잡혀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고문이 관습이기 때문에, 고위 사령관이 정보를 더 알아보라고 했기 때문에 고문을 당했다.

이는 미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관련 인사들을 고발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 하지만 의회의 속성상 11월 대선 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부시 대통령이 승리해 연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미 유권자들이 고문을 자기들의 관습으로 만드는 셈이 된다. 자라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잘 생각해보자.

정리=윤혜신 기자 나폴레옹이 1804년에,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1848년에 각각 황제가 된 것을 두고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순서만 바꿔 이 상황을 재현했다. 몇년 전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희극의 뒤를 이은 비극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문을 정책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최근 언론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백악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사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까봐 우려한다. 실제 그들이 통제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론 미국 사법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고문을 명령.위임.용인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변호인단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전쟁 범죄를 짓고도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했다. 자문 변호인단은 "부시 대통령은 고문을 금지하는 국제법이나 미국법에 의해 제재받지 않으며 그의 권한에 따라 고문을 행한 미국인을 미 사법당국이 고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견해는 국가 안보가 미국법과 국제 조약보다 우위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는 제네바 협정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미국이 어떻게 최고의 규범을 무시하고 짓밟는지를 알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체포하고, 비밀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는 데 국제법과 군 규정이 방해가 된다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들은 이런 장애물들을 없애고 싶어했다. 이는 나치 독일에서 대량학살을 지휘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법적.행정적 장애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불평했던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미 정부 고위 관리들은 그동안 이 불행한 수감자들을 어떻게 다룰지(얼마 동안, 어떤 자세로, 어떻게 고통을 줄지)만 계속 생각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아차, 이들은 이제서야 일이 잘못되거나 이 때문에 누군가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대통령은 5월 24일 "일부 미군들이 … 우리의 가치를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리들은 아부 그라이브 스캔들이 "몇몇 촌뜨기들"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미군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대부분 이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계획하고 전개했다. 미 행정부는 왜 저항이 벌어지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자 주민들을 무작위로 체포하고 신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부도덕할 뿐 아니라 쓸모없고 비이성적이었다. 고문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정보 전문가나 특수전 전문가 사이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당신이 어떤 정보를 가진 주요 인물을 붙잡아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말이 사실일까? 아니면 단지 고문을 피하기 위해 눈치껏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해준 것일까? 설혹 사실을 말했더라도 그것이 유용할지는 의문이다. 모든 저항 세력은 점조직으로 이뤄져 개인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데다 한명이 잡히면 모두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이라크인의 대부분은 우연히 또는 미군의 체포대상자와 관계가 있거나 이름이 비슷해 잡혀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고문이 관습이기 때문에, 고위 사령관이 정보를 더 알아보라고 했기 때문에 고문을 당했다.

이는 미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관련 인사들을 고발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 하지만 의회의 속성상 11월 대선 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부시 대통령이 승리해 연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미 유권자들이 고문을 자기들의 관습으로 만드는 셈이 된다. 자라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잘 생각해보자.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윤혜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