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한은 “유기적 협조”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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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아침 한국은행을 방문한 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左)이 조찬 회동에 앞서 이성태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한국은행을 찾아 이성태 총재와 손을 잡았다. 1998년 새 한은법 시행으로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이 재무부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넘어간 이후 장관이 한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강만수 전 장관은 이 총재를 비롯한 한은 간부들과 한 음식점에서 만나 저녁을 한 적이 있다. 이날 윤 장관의 한은 방문에는 허경욱 재정부 1차관, 노대래 차관보,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등 주요 간부들도 함께했다.

윤 장관과 이 총재는 이날 오전 8층 총재실에서 배석자를 물리친 채 15분간 단독 면담을 했다. 간간이 총재실 문 밖으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15층 간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간부들과 함께 미역국과 조기구이로 아침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이 지금까지 큰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유기적인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장관 취임을 축하드린다”며 “협조해 잘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윤 장관은 취임 다음 날(11일) 경기도 성남의 인력시장을 찾았고, 12일엔 고위당정협의에서 한나라당과 정책 조율을 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한은이다. 일자리 창출과 국회의 협조, 중앙은행과 공조를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 두 기관의 공조가 절실해졌지만, 그동안 환율·금리 정책이나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과정 등에서 적지 않은 마찰음이 나왔다.

윤 장관은 “앞으로 총재님을 잘 모시겠다”며 “한은의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총재를 부를 때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예우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친밀함도 강조했다. 그는 “이 총재와는 오랜 정책 파트너로 눈빛만 봐도 알 만큼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장관과 이 총재는 과거 한은법 개정이나 한은의 독립성 문제를 둘러싸고 재무부와 한은이 대립할 때 두 기관의 대표적 강경파로 알려졌던 사이다. 윤 장관은 재무부 국장 시절부터 한은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올해 장관에 내정되기 전까지도 한은의 정책 대응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이날의 회동이 ‘대외용’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상견례 차원이라 구체적인 현안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게 한은 민성기 공보실장의 설명이다. 다만 중앙은행의 역할과 기능을 개편하는 한은법 개정에 대해 원칙적인 공감대는 확인했다. 이 총재는 “세계적인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중앙은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복잡한 사안이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정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당장 한은법을 손질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므로 좀 더 시간을 갖고 치밀하게 검토하자는 뜻이다. 추가경정예산안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한은이 사들이는 문제에 대해 윤 장관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다시 협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정치권에선 한은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나오고 있다. 한은의 역할을 물가안정에 국한시키지 말고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8개의 한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9일 법안심의 소위원회에서 법안 개정을 논의한다.

김원배·최현철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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