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한일 어업분쟁 저자세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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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8일 어업분쟁을 다룬 한.일 외무장관회담은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찮다.

양국 장관은 일본의 우리 어선 나포로 야기된 어업분쟁을 더이상 확산시키지 않고 봉합함으로써 회담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 합의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상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어 공허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지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걸로 치자" 고 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어선나포 사건이후 정부의 서슬퍼런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정부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 못하면 협상을 재개할 수 없다" 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합의문 어디에도 일본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없다.

합의문은 "한국어선 나포로 인한 사태가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 바람직스럽지 않은 영향을 미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고 돼있다.

양국이 공동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회담이 끝난뒤 한 외무부 관계자는 이를 일본측의 사과라고 설명했다.

일본관리들은 '한국어선의 직선기선 침범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것' 이라고 설명할게 틀림없다.

재발방지 역시 양국 정부의 공동 노력사항으로 결말지어졌다.

이를 토대로 일본은 우리 어선 단속을 자제하겠지만 우리쪽에서도 일본의 직선기선내에서의 조업을 자제토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진 것이다.

외무부 관계자는 어업협정 개정협상 재개에 합의한 이유를 "한.일간 긴장이 고조돼 일본이 어업협정을 파기하면 우리 어민만 손해" 라고 설명했다.

협상재개 방침이 '한.일 관계의 복잡.미묘한 현실 때문' 이란 점은 십분 이해가 간다.

특히 어업협상은 우리 어선의 일본 연안 조업문제이므로 기본적으로 우리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외무부는 왜 사건 초기 그토록 강경한 태도를 보였는지. 일본을 겨냥한 '협상용' 이었다는 식의 변명으로는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섭과정에서 운신의 폭을 좁혀놓는 결과가 됐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외무부관리는 "대선을 앞두고 한.일 국민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며 회담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때문에 혹시 대선정국을 의식, 시끄러운 일을 무마시켜야겠다는 차원에서 봉합에만 급급했던게 아니냐는 의문마저 드는게 사실이다.

협상의 어려움을 인정하지만 "대 (對) 미.일 외교에 너무 쉽게 양보한다" 는 지적에도 정부가 귀 기울여줄 것을 당부한다.

[최상연 정치부 기자,콸라룸푸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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