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거나 웃기거나 … 하승진은 ‘4차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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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2m21㎝의 거구에 무표정한 얼굴.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24·KCC·사진)의 외모를 보면 유머감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하승진은 요즘 KCC 선수단을 웃기고 있다. 의외의 유머감각으로 동료들이 배꼽을 잡게 만드는가 하면, 상황 파악을 잘 못해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하승진은 실력으로도 KCC 코칭스태프를 웃게 만들고 있다. 시즌 초반만 해도 하승진은 NBA 경력(2004~2006년)이 무색할 정도로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 경기에서는 수비와 리바운드에 충실한 플레이로 상대 센터를 압도하면서 팀 관계자들의 함박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

◆웃기는 남자 하승진=지난 1일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하승진은 센터로서는 파격적으로 3점슛을 성공시켰다. 잠실 학생체육관의 장내 아나운서가 ‘골 뒤풀이’를 부탁하자 하승진은 한 손으로 어깨를 털어내는 듯한 동작을 했다. 동료들은 이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 동작은 ‘꽃미남 그룹’으로 유명한 가수 SS501의 안무다.

올스타전 후 KCC 관계자는 하승진의 유머 때문에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이 관계자가 3점슛 이야기를 꺼내자 하승진은 우는 시늉을 하며 “앞으로 3번(슈터를 가리키는 포지션 번호)으로 쓰지 말아주세요. 전 정말 5번(센터)이 하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애교를 섞어 말했다. 하승진은 정규리그에서 3점슛을 시도한 적이 한번도 없다.

하승진은 자유투 성공률이 39.53%에 불과하다. 허재 KCC 감독은 하승진에게 “숨을 고르고 던져야 성공률이 높다. 운동화 끈이라도 묶는 척하며 시간을 끌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하승진은 그 말을 까맣게 잊은 채 무작정 슛부터 시도하곤 한다. 보다 못한 허 감독이 한번은 자유투 라인 앞에 선 하승진을 느닷없이 불렀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하승진은 허 감독에게 화를 내며 답했다고 한다. “감독님, 저 자유투 던져야 하니까 부르지 마세요”라고. 허 감독은 “하승진의 ‘4차원 유머’에 벤치가 웃음을 터뜨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경기 중에도 분위기가 좋으면 춤추는 듯한 오버액션으로 동료들을 웃긴다”고 말했다.

◆강한 남자로 거듭난 하승진=하승진은 11일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24분간 11점·11리바운드·4블록슛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기량이 부쩍 좋아졌다는 평가다. 특히 수비와 조직력에 눈을 떴다는 칭찬을 듣는다. 하승진은 “지금까지 개인 플레이에만 집착했는데, 최근 도움수비에 힘쓰고 있다. 조직적인 농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KCC는 하승진의 높이를 앞세워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던 모비스·오리온스·LG를 연파했다.

하승진은 감정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단점도 극복해 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출장 시간이 적어서 불만”이라고 돌출 발언을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이후 하승진은 인터뷰 때마다 “개인 욕심을 모두 버렸다. 신인상도 동료 강병현이 타도록 밀어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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