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伏 농사일 몰린 여름철 몸 보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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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음력 6월 (올해는 7월5일부터 8월2일) 을 '깐깐유월' 이라 한다.

온갖 농사일이 몰려있어 한시도 맥을 놓고 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7월을 '어정칠월' , 8월을 '건들팔월' 이라 했던 것만 봐도 음력 6월의 일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옛말에 농사일을 '여름지이' (여름을 짓는다) 라고 했는데 이는 여름에 곡식 알맹이가 열린다는 뜻이다.

일은 힘들고 몸은 삐치고 (기운이 죽 빠지고) 자연 식욕도 감퇴되기 때문에 옛날 중국 조정에서는 고기 고은 죽을 신하들에 나눠줬다고 전하며 민간에서도 고기 먹는 모임을 갖는 것이 예가 됐다.

복 (伏) 날을 잡는 법은 하지 (夏至) 후 세번째 경일 (庚日) 을 초복 (初伏) 이라 하여 올해는 7월17일이다.

그로부터 열흘뒤인 27일이 중복 (中伏) 이고 다시 열흘뒤인 8월6일이 말복 (末伏) 이라야 되겠으나 말복은 입추 (立秋) 지난 뒤라야 되기 때문에 열흘을 드티어서 (넘겨서) 16일에 말복이 들게 된다.

이런 것을 월복 (越伏) 이라 하여 몹시 더운 여름으로 치나, 이때쯤이면 더위도 자연 한풀 꺾이게 마련이다.

복의 유래나 명칭에 대해서는 뚜렷한 것이 없다.

흔히 정식 절기가 아닌 속절 (俗節) 로 치는데, 더위를 잡는다 (제복.制伏) 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어려서 듣기로는 하지가 지나 한참되면 가을 기운인 금기 (金氣)가 고개를 쳐드는데, 하도 더워서 엎드리기를 세번 한 뒤라야 서늘한 기운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들 하였다.

요사이 무척 더우면 무조건 '무더위' 라고 하는데, 습기가 많아 무지룩하고 답답하게 더운 것이 무더위고, 장마가 지나 뜨거운 볕이 내리쪼여 더운 것은 '불볕더위' 라 한다.

복이 들고 온종일 불볕더위 끝에 우루루퉁탕 천둥번개를 치며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지면 그 시원하기라니…. 어른들은 농사일로 주름진 얼굴을 활짝 펴며 벼포기가 쭉쭉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며 고마워들 한다.

그런 가운데 복날이 닥치면 그날 지나칠 수 없다며 '복대림' 할 궁리를 한다.

'대림' 이란 함께 모여 먹고 즐기는 놀이를 뜻하는 말로 봄철 꽃필 때 벌이는 놀이를 '꽃대림' 이라 한다.

그런데 6월은 '썩은 달' 이라하여 격식갖춘 잔치는 안하는 것이 법도였다.

옛날에도 임금님 탄신이 복중에 들면 앞당겨 기념하는 것이 상례였다.

더위로 음식이 변할까봐 그런 것이다.

그래서 복대림을 해도 그 자리에서 펄펄 끓여서 싹 먹고 헤어지지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

흔히 편한 것을 보고 '댑싸리 밑의 개팔자' 라고 하지만 이때가 되면 견공들이 수난을 당한다.

개를 먹는 것은 더위를 이겨내려 자양분을 취하는데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육류여서 그렇지 다른 뜻은 없다.

그것도 양념을 진하고 얼큰하게 해 먹는 것이 통례다.

그래서 소고기를 이렇게 조리한 것을 육개장, 또는 점잖게 한자어로 대구탕 (代狗湯) 이라하여 더위로 감퇴한 소화기능을 북돋아 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그것이 식성에 안맞을 때는 약재를 넣고 곤 연계백숙 (軟鷄白熟) 을 약삼아 먹는다.

봄에 깐 햇병아리를 야금야금 다 잡아먹고 명년에 알 낳으라고 씨할만큼 남겨놓은 것이 씨암탉인데 사위가 왔다고 희생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재수없는 놈이다.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유래된 중에 특이하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이 유두 (流頭) 놀이다.

신라때부터 6월 보름날 부녀자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 가서 머리감고 논다는 기록이 있는데 금년에는 7월19일이다.

물에는 부정 (不淨) 한 것을 씻어버리는 영력 (靈力) 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같아 종교의식에서도 세례 (洗禮) 라는 형식으로 전하는데 다분히 종교적인 성격을 띄고 행해진다.

꼭 유두날이 맛이랴? 복중 하루를 잡아 가까운 산중 계곡에서 닭죽을 쑤고 갖은 과일을 마련해 하루를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 친구 하나는 멋모르고 정릉리 계곡에 갔다가 쭈글쭈글한 반 나체의 할머니에게 "학생녀석들이 넓은 강이나 개울로 갈 것이지 미쳤다고 이런 델 오느냐" 는 호통을 듣고 쫓겨왔노라고 웃었다.

자그마치 60여년전 일이다.

이종훈 국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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