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재선거 …맥없이 무너진 DJP 연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회창 (李會昌) 바람' 은 역시 거셌다.

그 돌풍에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김종필 (金鍾泌) 자민련 총재가 연합한 DJP군단이 맥없이 무너졌다.

설마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자 특히 자민련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국민회의도 정도는 덜 하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24일 충남 예산 (禮山) 재선거에서 신한국당 오장섭 (吳長燮) 후보가 국민회의.자민련 연합후보인 조종석 (趙鍾奭) 씨에게 거둔 승리는 단순히 여당 의석이 한자리 늘어난 게 아닌, 여러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가 12월 대선의 전초전 (前哨戰) 성격을 띠었던 만큼 趙후보의 낙선은 DJP의 파괴력에 대한 회의 (懷疑) 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DJ와 JP가 단일화를 이뤄낸다 해도 이회창후보에게는 안된다' 는 불안심리가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회창후보의 공세에 맞서 충청권 지지기반을 고수하려던 김종필자민련총재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위기의 JP와 자민련' 이다.

유례없이 예산 현지에 며칠씩 머무르며 총력을 기울인 金총재로선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DJP 후보단일화.보수 대연합등 복잡다단한 관문을 뚫고 나가야하는 마당에 지지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것은 돌이키기 어려운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내부동요가 예상된다.

실제 김용환 (金龍煥).정석모 (鄭石謨) 부총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위 당직자들은 金총재의 면전에서 "이번 선거에서 지면 우리는 끝장" 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

이와 더불어 金총재측은 본격화하는 DJP 단일화협상에서 그만큼 협상력을 상실케 됐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여론조사등에서 김대중총재에게 뒤지는 터에 충청권에서조차 표몰이를 자신할 수 없게 된 상황은 金총재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기에 충분하다.

국민회의측은 김대중총재가 23일 정당연설회에서 "이번 선거는 김종필총재의 사기 (士氣) 를 떨어뜨리고 입지를 대폭 약화시키느냐, 아니면 정치적 위상을 높이느냐가 걸려 있다" 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선거의 악영향을 김종필총재에게 한정하려고 부심하고 있다.

이는 충남이라는 사태의 진원지에 미루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현역의원만도 수십명을 현지에 파견해 지원했던 국민회의고 보면 역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자민련보다 상대적으로 충격이 작은 국민회의는 사태를 DJP 후보단일화에 유용한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지만 자민련측이 갈피를 못잡고 있어 일단 관망하는 상태다.

다만 재선거에서의 패퇴가 DJP연합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쪽 기류는 다르다.

이미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점쳐온 일각에선 단순한 DJP연합이 아닌, 이번 신한국당 경선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한 민주계 인사들과 구 (舊) 여권인사들을 두루 망라한 '대연합' 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 김종필총재가 더욱 보수 대연합쪽으로 치우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날 동시에 치러진 포항북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태준 (朴泰俊) 전포철회장을 축으로 한 영남권 세력과 손을 잡는 한편 신한국당 이한동 (李漢東) 고문등과도 지속적인 물밑교섭을 진행하리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회창대표의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당선에 이은 예산 재선거및 포항북 보선 결과는 정국 기상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정계개편의 초강력 촉매로 작용할게 분명하다.

예산 = 김현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