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파일] 앤서니 드래전 감독 '소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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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금.은.우라늄 그리고 우주 시대를 위한 각종 희귀 광물을 찾아 평생을 산에서 보낸 아버지. 어린 딸을 위한 아이스크림 값이 없어 외상을 하면서도 집세는 이미 우편으로 보냈고, 딸 아이 수업료는 비서를 통해 수표로 보낼거라고 거짓으로 큰소리친다.

투자만 한번 잘 하면 우리도 멋지게 살아볼 수 있을거라며 광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 싸구려 모텔이 아닌 깨끗한 아파트가 소원이었던 아름다운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허풍과 술에 대한 의존은 더욱 커진다.

사기죄로 감옥에 갔다온 아버지는 세상이 바뀐 것도 모르고 여전히 광맥을 찾아 산을 오르고 끝내 산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앤서니 드래전 감독의 '소냐' (Imaginary Crimes.드림박스) 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보란 듯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초상을 그린 서글픈 멜로물이다.

성인이 된 딸 소냐 (페루자 발크)가 회상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없는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대학에 가고파 하는 딸에게 "지식인이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망치는 사람들" 이라고 억지를 쓰던 자존심 강한 아버지, 하비 카이틀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전세대 아버지의 모습을 잘 연기한다.

원작자 실라 밸런틴이 아버지의 초상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숙제 대신 너의 글을 제출해도 좋다는 교사의 격려 덕분이었다고 한다.

휘트먼의 시를 즐겨 외우던 이같은 스승의 모습도 새삼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냐' 는 우리 영화 '아버지' (시네마트) 처럼 드러내 놓고 눈물샘을 자극하지는 않지만 주름진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게 만드는 영화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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