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강압적 담배수출협상 의회 일각서 제동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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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87~88년 미국 무역대표부 (USTR)가 당시 한국엔 이름조차 생소했던 '수퍼 301조' 라는 강력한 무역보복법안으로 한국 정부를 위협, 담배 시장 개방을 관철시켰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많지 않다.

당시 서울에선 미국을 비난하는 시위가 잇따랐고 "미국은 암 (癌) 을 수출하려 하는가" 라는 격정적인 주장도 쏟아져 나왔다.

제시 헬름스 의원 (공화.노스캐롤라이나) 등이 앞장 선 미 의회에서도 "미국 상품에 대한 차별에는 철저히 보복해야 한다" 는 강경론 일색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담배시장은 개방됐고 미국 담배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지금 워싱턴에서는 "한국을 위협해 관철시켰던 것과 같은 '담배 협상' 을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는 목소리가 점점 더 세를 얻어가고 있다.

미 상원의 프랭크 로텐버그 (민주.뉴저지).론 와이든 (민주.오레곤).리처드 덜빈 (민주.일리노이) 의원과 하원의 로이드 더겟 (민주.텍사스) 의원은 23일 (현지 시간) 상원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범세계 반 (反) 담배법' (Worldwide Tobacco Disclosure Act of 1997)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USTR을 포함한 행정부가 무역보복 위협을 통해 외국의 담배규제를 약화시키려는 협상 금지▶행정부의 대외 담배 판촉 금지▶미국내의 담배 경고문구와 똑같은 내용의 경고문구를 수출담배에 현지어로 표시케 한다는 것등이다.

입법 추진 배경에 대해 로텐버그 의원은 88년 미국이 한국과 태국의 담배시장을 열어젖힌 것을 예로 들며 "통상논리로 보면 그 나라 담배시장을 연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나라 국민들의 '조기 사망' 을 촉진한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입법추진이 쉽게 관철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예컨대 노스캐롤라이나.버지니아등 담배 생산농가가 많은 주의 의원들이 동의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의 기부금을 많이 받는 공화당 의원들도 이번 입법 추진에 끼어 있지 않다.

또 USTR은 예나 지금이나 "통상협상에 나서는 우리들의 임무는 미국 상품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일 뿐" 이라는 논리로 대응할 것이 뻔하다.

어쨌든 담배시장을 연지 9년이 지난 지금 이번 입법 추진은 우리의 통상협상과 보건정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우루과이라운드 (UR) 의 시대에 외국 상품에 대한 차별은 물론 없어져야 하지만 차별에 대한 '절대적 기준' 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제 우리도 '외제나 국산을 가리지 않고 담배에 대한 무차별적인 규제' 를 적극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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