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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만 울~어 버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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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관리자라면 누구나 P차장처럼 아랫사람 때문에 속상했던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가장 속상할 때는 역시 지시‘가 먹혀들지 않을 때다. 지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려고 만든 것이 위계질서고, 그래서 회사가 날 ’장‘으로 임명했는데, 이것이 먹혀들지 않아? 여간 초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자주 이런 시츄에이션이 일어날까? 흔한 일이 아니라 우기고 싶지만,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3명 가운데 2명 정도가 하극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그 하극상의 강도가 별로 높지 않다는 것. 말대답을 하거나,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안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라니까 말이다. 반면에, 가끔은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단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무섭거나 또는 충격적인 사실은 하극상이 일어나는 빈도가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는 같은 설문조사 결과다. 3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매우 증가’했다고 답을 했다고 하는데, ‘약간 증가’는 더 많다! ‘낮은 강도의 하극상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났다.’ 이것이 진실이라는 건데, 누가 감히 승진을 하려 들 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여자 상사가 많아지고, 나이어린 상사가 많아진 것도 하극상 증가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가 겹친 경우, 그러니까 나이 어린 여성 직장 상사를 둔 나이 많은 남성 부하들, 그들이 참아내질 못하는 경향은 이미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 사례의 P차장을 더 힘들게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K과장이 학교 선배였던 것이다. 학교 선배다 보니, 일 안하고 개기는 일이 잦아도 막말을 할 수도 없고, 그냥 두었을 뿐인데, 문제는 일이 너무 힘에 부쳤던 것. 착하지만 미련하고 순진했던 P차장은 결국 버티다 못해, 다른 회사로 일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다른 회사로 옮기기 전에 K과장과 술 한잔하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비협조적이었는지 물어봤더니, 자기도 지금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마음이 이렇게 회사를 떠나 있다 보니, 일할 마음이 전혀 아니었다고. 그러던 K과장은? 그 회사에 그대로 남았고, 지금은 승진해서 부장이라나???

상사지만 상사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사는, 나이 어린 상사가 아니더라도 매우 흔하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이 상사가 무능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정도면 부자지간의 세대차이 이상이 아닐까 싶다. 또, 현재의 직장 상사와 다시 일할 생각이 없다는 부하도 3명 가운데 2명 정도 된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도 있다.

상사답지 않은 상사와 일을 해야 하는 부하는 괴롭고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개성이 제각각인 다수의 부하들을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상사의 고충도 이만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이런 고충을 반영한 시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군기잡기다.

직장에서 웬 군기잡기? 아하! 여러분이 잠시 잊었나본데, 회사는 기본적으로 민주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 상기해보기 바란다. 난 혼자고 저(부하)들은 다수고, 저들을 실력으로나 아량으로나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 내렸을 때, 상사라면 누구나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군기잡기고, 그래서 아주 널리 발견되는 수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직장 상사들이 그 유혹을 느끼고 있고, 심지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군기잡기에 효율적인 측면이 많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적으로 한답시고 토론도 자주하고 의견수렴도 자주하고, 부하들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비용 면에서나 정신건강 면에서 부담이 덜한 것도 사실이고.

‘어차피 가족이 될 자들도 아닌 바에야 약간 거리를 둔 상태에서, 속으로야 나를 욕하건 말건 겉으로만 따라주게 만들면 그만 아닌가?’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P차장의 경우에도 이렇게 K과장을 대했더라면 마음의 병 때문에 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새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늘 군기만 잡고 돌아다니면 미친 개 취급 받는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겠지?

자, 지금 부하들이 당신을 잘 따르질 않는가? 그래서 울고 싶은가? 확~ 군기를 잡아버려 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벌써 저질렀는가? 잠시 참고,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저들 잘못인가? 아니면, 내 잘못인가? 아마 십중팔구는 당신 잘못일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권력, 그 영향력의 크기와 방향이란 것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당신 잘못이니까 미운 부하까지도 좋아해줘야 하냐고?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많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이런 부하가 좋은 부하다 말을 하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설문조사 결과 하나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정이 안가는 부하직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을 한 것이다.

일을 잘해도 싸가지가 없으면 당연히 정이 안 가는 것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이성적으로 끌리다 보니,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일은 별로 못해도 충성을 다하는 자, 아부를 잘하는 자에게 이끌리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상사로서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것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건, 여기에 한 가지만 살짝 더 얹으라는 것이다. 미운 놈 다시보기. 미운 놈을 다시 보면, 당신 자신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 처음부터 미운 놈이 있었겠는가?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에게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고.

상사와 부하의 인연은 어쩌면 부부 간 인연보다 깊은 지도 모른다. 안 그렇다면 어떻게 마눌님보다 더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가 말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미운 놈 다시보기를 하다보면, 의외의 선물을 건질 수도 있다. 어찌 아는가 그 놈이 잘 돼서, 당신을 채용할지?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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