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만세” … “잃은 게 더 많은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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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란, 이슬람혁명 만세!”

이란 이슬람혁명 30주년을 맞이한 10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메이두네 엥겔라브(혁명광장)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광장엔 형형색색의 깃발과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연녹색, 흰색, 그리고 붉은색 세 줄로 구성된 이란의 깃발은 광장과 거리 전체를 뒤덮었다. 수십m에 달하는 대형 이란 깃발 두 개는 인파와 함께 전진하듯 움직였다.

이란 이슬람혁명 30주년인 10일 테헤란에서 학생들이 30년 전 혁명을 주도했던 최고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左)와 현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란이 최근 발사에 성공한 인공위성 운반 로켓 사피르-2를 본떠 만든 로켓 모형이 설치된 테헤란 어저디(자유) 광장. 이날 행사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참석했다 . [테헤란 AP=연합뉴스]


“저기 만년설이 보이는가? 우리의 혁명 정신은 저 산의 눈처럼 녹지 않을 것이다.”

여대생 나디예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멀리 보이는 해발 4000여m의 알보르즈 산 위에는 그의 말처럼 흰 눈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날은 1일부터 열린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에 시작된 집회는 기념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혁명의 주역 아야툴라 호메이니, 현재 최고 종교지도자 하메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사진이 광장과 거리 곳곳의 전신주와 가로등 위에 붙어 있었다. 군중은 연방 구호를 외치며 혁명광장에서 메이두네 어저디(자유 광장)까지 수㎞를 행진했다. 70대 노인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30년 전 내가 걸었던 길을 손자와 함께 가니 더욱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30년 전 혁명의 주무대다. 혁명광장엔 혁명지도부 본부가 있었고, 자유광장은 정부군과 맞서 대치했던 곳이다. 당시 호메이니 중심의 혁명세력은 친미 성향의 팔레비 국왕 정권을 붕괴시키고 이슬람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이날 테헤란 등 전국 수십 개 주요 도시에서는 대규모 축하 행사가 열렸다. 이란 방송은 10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전국적으로 참가했다고 밝혔다. 매일 밤 불꽃놀이 축제가 이어졌다. 이날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선 공항 여직원들이 입국자들에게 초콜릿, 사진용 유리 액자, 시아파를 상징하는 검은색 목도리가 든 녹색 쇼핑백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반미 구호 난무=행진 내내 사람들이 들고 있던 수천 개의 플래카드에는 정치 색채가 짙은 구호들이 적혀 있었다. 외국 언론을 의식한 듯 ‘DEATH TO AMERICA(미국에 죽음을)’ 등의 문구도 보였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을 악마로 형상화한 인형도 등장했다.

이날 자유광장에서 혁명을 축하하는 이들의 연설에선 환호와 반미, 반이스라엘 구호가 터져 나왔다. 아마디네자드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향해 “상호존중의 틀에서 대화를 나누자”라면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경제난에 불만도 표출=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과는 달리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나친 행사에 반감을 표시했다. 이날 행사로 시내 중심 주요 도로가 대부분 통제되자 택시 기사들은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한 택시기사는 “하루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열흘간의 행사가 말이 되느냐”며 비판했다. “혁명이 개인의 삶에는 특별한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경제와 생활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란의 실질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나왔다는 한 남자는 “하루빨리 현실적인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서방과 대치해 온 지난 30년간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다”며 “‘이념보다는 실리’가 경제적으로 낙후해 가는 이란에 보다 현실적인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축제와 분노, 그리고 무관심이 교차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 30주년 행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테헤란=서정민 본지 중동전문위원(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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