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컷!] 베끼기 급급했던 SBS 개편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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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SBS는 지난달 14일과 30일 두차례의 개편을 통해 10여개의 새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밤9시 뉴스를 8시로 되돌렸다.

봄개편 이후 바닥에 떨어진 SBS의 시청률과 명예를 한꺼번에 회복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런데 한달 가량 이를 지켜본 느낌이 영 개운치 않다.

프로그램의 질로 승부했다기보다 다른 방송사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 베끼기와 속 보이는 편성전략으로 일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달 14일부터 선보인 SBS '토요 미스테리극장' 이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의 아류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면서도 문제점은 더 많았다.

시청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수도 있는 공포담을 다루면서도 '경험자' 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그저 당사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거기에 과장된 귀신 분장을 곁들여 더욱 공포감을 조장했을 뿐. '베끼기' 때문에 15일의 '김창완과 신은경의 아름다운 아침' 의 'TV인생상담' 코너에서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지난달 18일 KBS '아침마당' 의 '풀고 삽시다' 에 나왔던 일반인 상담신청자가 다시 나와 40분 가까이 KBS방송 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 이들은 의처증에 시달리는 아내와 그 남편. KBS방송 때는 부부 갈등을 호소하던 두 사람이 전문가와의 상담 뒤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화해까지 했었다.

SBS측은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들까지 일일이 확인 할 수 없어 방송에 나온 적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출연시켰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도 KBS 아침방송과 구성을 차별화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편성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30일 개편 뒤 SBS의 밤11시대 프로그램은 모두 10시55분에 시작한다.

개편 이전은 KBS.MBC와 같이 11시에 시작됐다.

'일단 5분 빠르게 나가고 보자' 는 속셈이 비친다.

물론 SBS가 메인뉴스를 밤8시로 되돌리며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힌 점, 단막극 '70분 드라마' 를 통해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사하고 있는 점등은 높이 살만하다.

고질적인 프로그램 베끼기와 얄팍한 편성 전략이 눈앞의 시청률을 잠시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명예를 높여주지는 못한다는 점에 유념한다면 SBS는 훨씬 유익한 방송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지 않을까.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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