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씻김' 15년만에 재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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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비록 직접 연극을 보지 못했더라도 그 명성의 후광만으로도 낯이 익은 연극이 있다.

24일 산울림소극장에서 개막돼 8월24일까지 공연될 '산씻김' 이 바로 그런 경우다.

15년만에 만나는 무대지만 오히려 숨어있기에 더욱 신비스러워 보이는 작가 이현화 (현KBS심의위원) 의 대표작이자 또한 '광기의 연출자' 채윤일의 으뜸 작품이다.

이 둘이 다시 만난 것이다.

그 후광의 실체는 '파격' 에서 비롯된다.

형식적 파괴와 내용의 기괴함,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한꺼번에 접신 (接神) 의 지경으로 몰고가 산자의 죄를 씻는 (치유하는) 엑스터시의 순간은 황홀경 그 자체다.

'산씻김' 는 제목에 드러나 있듯 산자의 죄를 씻는 과정의 연극적 구현이다.

즉 망자 (亡者) 의 죄를 사 (赦) 하는 전래의 '씻김굿' 을 현대인의 병리를 치유과정으로 환치시킨 작품. 때문에 연극은 전체가 한편의 제의 (祭儀.Ritual) 로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은 4명의 여인. 자동차 고장으로 곤경에 빠진 '한 여자' 가 고속도로변 한 사무실로 찾아든다.

카센터로 전화를 걸던중 출입문이 잠겨버리고 전화도 끊어진다.

이때 또 '한 여자' 가 등장, 출입문을 폐쇄하고 건물내 집기를 모두 치우며 어떤 의식을 준비한다.

침묵과 공포,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서 소복을 입은 소녀 두명이 새로 나타나고 본격적인 제의가 시작된다.

이 여자들은 무가 (巫歌) 를 읊조리며 제단을 차리고 탈진한 여자의 옷가지를 조각조각 오려 그 제단에 바친다.

굿이 절정에 이를 무렵 무녀들이 여자의 몸에 유인제를 뿌리자 그녀의 몸에서 바퀴벌레 (죄의 부스러기)가 줄줄 쏟아져 나온다.

섬뜩한 폭력, 이어 암전후 무대가 밝아지자 여자는 찬란한 광채속에 깨어나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작가 이씨는 이 밀폐된 공간 (영적인 세상)에 갇힌 한 인간 (우리 자신들) 이 엑스터시를 통해 구원.치유받은 과정을 현대판 '씻김굿' 으로 상정했다.

연극을 잔혹적인 극한의 세계로 몰아 관객 또한 그 영적세계로의 이행을 통해 구원받게 한다. 그러나 연출자 채씨는 이번 무대에서 15년전과 다른 연극문법을 구사할 생각이라고 한다.

일종의 아르토식 '잔혹극' 이 아니라 유미주의적 연극. 그는 "아름답고 조용하며 깨끗한 공간에서 긴장과 두려움을 극대화시켜 인간본능에 다가서려 한다" 고 말했다.

우리 연극에서 굿은 가장 완성된 극적 형식미의 보고 (寶庫) 이자 연희의 근간을 이룬다.

이윤택의 '오구' 가 그런 것처럼 일찍이 '산씻김' 또한 한국적 극형식의 뿌리를 굿에서 찾았다.

전해져온 명성에 걸맞게 매우 기대되는 무대다.

극단 쎄실 제작, 이미정.하도희.정소희.김정아 출연. 매일 오후4시30분.7시30분. 02 - 334 - 5915.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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