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금융위기]6. 한국 금융기관, 태국서도 '부실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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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내에서는 요즘 '태국' 하면 바트화폭락을 떠올리지만 현지에 진출해있는 금융기관은 오히려 대출부실화가 더 큰 현안이다.

외환은행 방콕지점은 지난 3월 파이낸스회사인 원홀딩컴퍼니에 이어 이달초 태국 최대의 전자업체인 알파텍이 지급불능상태에 빠지자 대출금회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한은행 방콕사무소도 일본의 후지은행이 합작투자한 태국의 한 파이낸스회사에 3백만달러의 대출을 주선해줬다 부실조짐이 보이자 회수할 길을 찾고 있다.

종금사들도 수시로 방콕에 실무자들을 출장보내 현황파악 및 대출회수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가운데 원홀딩컴퍼니에 대한 채권은 아예 떼이는 것으로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모회사인 파이낸스원이 다누뱅크와 합병하면서 채무를 떠안아 해결키로 했으나 최근 합병이 결렬돼 채무상환부담을 지지 않겠다고 발을 뺐기 때문이다.

원홀딩컴퍼니에는 3~4개 시중은행과 7~8개 종금사가 모두 8천만~1억달러쯤 물려 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껍데기밖에 안 남은 회사를 상대로 기약없는 소송을 벌이는 것뿐이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에는 16개 파이낸스회사가 부실화돼 중앙은행 (BOT) 으로부터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5개 시중은행의 부도설이 끊임없이 나돌아 예금이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의 파이낸스회사 및 은행들에게 한국계 금융기관도 상당규모의 외화대출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이들 태국 금융기관들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면 우리 금융기관에게도 직접 충격이 올 것이 분명하다.

홍콩, 싱가폴에서는 이미 태국에서의 한국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최고 3억달러에 달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 연말까지 바트화 폭락의 후유증으로 태국기업, 금융기관의 외채상환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한국 금융기관들은 이점을 걱정하고 있다.

자금사정이 악화돼 나자빠지는 곳이 자꾸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국정부와 중앙은행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쓰러질 경우 내국인 (예금자나 대출기관) 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한국금융기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타농재무장관은 일본을 방문, 공식연설을 통해 "내외국인 차별을 하지 않겠다" 고 밝혔으나 아직 외국기관들의 불안은 걷히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주말 태국경찰이 2개 외국금융기관을 덮쳐 루머유포혐의로 강제 압수수색을 강행한 것도 외국기관들의 불안과 반발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외환은행의 유덕희 방콕지점장은 "태국정부나 중앙은행이 외국금융기관의 채권상환문제 및 환율제도와 관련해 자꾸 말을 바꿔왔기 때문에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있다" 고 말했다.

어쨌든 외국의 금융불안과 경기침체에 한국 금융기관이 말려들어가 직접피해를 본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라고 방콕주재 국내 금융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태국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수익률이 높다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채 우르르 몰려들다 물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은행들이 고수익을 올린뒤 재빠르게 발을 뺀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한은행 방콕사무소 박익혁과장은 "후발 종금사들이 제대로 심사능력을 갖추지 않은채 유명한 외국금융기관이 주간사로 나서는 대출에 덥석 손댔다가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 말했다.

방콕 =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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