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섬 편법 인수 논란 … 동양 현재현 회장에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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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인수’ 논란이 벌어졌던 동양의 한일합섬 인수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동양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지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재승 부장판사)는 10일 배임과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된 현재현(사진) 동양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동양메이저는 2007년 1월 3745억원에 한일합섬을 인수합병(M&A)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7월 동양이 법적으로 금지된 차입인수(LBO) 방식을 이용해 한일합섬의 주주에게 1800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며 동양메이저 추연우(49) 대표를 구속한 데 이어 9월에는 현 회장도 불구속 기소했다. 동양이 한일합섬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이 회사를 합병한 뒤 한일합섬 자산으로 이를 되갚는 방식을 썼다는 것이다.

동양은 지난해 열린 1차 공판에서 한일합섬 인수는 LBO 방식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동양메이저를 통해 특수목적회사(SPC) ‘동양메이저산업’을 설립해 자기 자본과 타인 자본을 투입한 뒤 M&A에 나섰다며 증거도 제시했다. 동양은 인수 초기자금 1300여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출연하고 나머지는 동양메이저 자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찰은 공소장에서 LBO 방식을 빼고 배임과 배임증재 혐의만을 적용해 기소했다. 고전적인 의미의 LBO는 아니지만 합병 자체가 한일합섬에 손해를 끼친 위법이라는 것이다.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을 합병한 직후 한일합섬 자산을 매각해 2700억원을 갚음으로써 한일합섬에 손실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동양이 한일합섬 인수를 위해 SPC를 설립함으로써 형식상으로는 LBO 논란을 피했지만 본질은 LBO 방식과 같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합병 후 피합병 회사의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기업이 합병되면 피합병 회사의 법인격은 소멸하고 그 권리와 의무는 합병회사에 합쳐지기 때문에 피합병 회사의 자산만을 취득하는 합병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LBO는 선진국에서 M&A 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LBO 방식의 M&A에 배임죄를 적용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이 같은 LBO 논란을 피한 ‘변형 LBO’가 배임죄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가 2, 3심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규 기자

◆LBO(차입인수 또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인수합병(M&A)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회사를 합병한 뒤 합병된 회사의 자산으로 이를 되갚는 M&A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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