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 '하늘과 순수와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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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 리나라에 종교학 전공자는 손으로 꼽힐 만큼 적다.

그 전공자 가운데서도 개별적인 종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종교현상을 꿰뚫어 종교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학자는 참으로 드물다.

서울대 정진홍교수는 그 드문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정교수가 펴낸 '하늘과 순수와 상상' (도서출판 강刊) 은 겉으론 지난 몇년간 전문지에 발표된 글을 모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묶는 게 힘들었을 것인데 하늘.순수.상상이라는 세 개의 신선한 주제로 잘도 담아냈다.

또한 종교학자답게 이런 상징적인 개념을 밑에 깔고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하늘' 을 다루는 1부는 '우리 종교문화 읽기' 라는 제목으로, 2부와 3부는 '순수' 와 '상상' 이라는 개념 아래 각각 '문화를 통한 종교읽기' 와 '종교를 통한 문화읽기' 라는 제목을 달아 여러 현상들을 종교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불교.기독교등 개별종교에 대한 논의는 넘치나 이들의 저변에 흐르는, 즉 인간의 보편적 체험으로서의 종교를 논하고 또한 한국문화와의 접목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제를 달고 싶어졌다.

'의미있는 종교적 주제를 찾아 순례하는 영혼의 답사기' 라고. 일반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한국인의 종교체험을 다룬 부분은 1부. 저자는 한국 종교문화의 기원은 '하늘체험, 자연스러움, 힘에의 지향' 으로 요약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루터기' 를 지니고, 우리들이 체험한 '하늘.산.물.숨결.다른 종교.몸' 등을 종교사적으로 풀어낸다.

2, 3부는 일반 독자에겐 다소 어려울지 모르겠다.

2부는 다원주의, 신학이나 사회학과 종교학의 관계, 이단.광신.보수주의 같은 전문적 논의이고 3부는 우리 일상생활을 종교로 읽는 연습을 한다.

의례.문학.예술.건축.음식.기술에 대한 설명은 폭넓기 그지 없다.

저자는 종교를 "삶의 무의미성이나 비존재성을 넘어서게 해주는 비일상적인 궁극성이나 신성의 체험" 이라고 정의했다.

크게 보아 나는 이 정의에 동의한다.

따라서 2, 3부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반면 1부에 서술된 기독교에 관한 서술에는 생각을 달리 한다.

정교수는 한국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한국인의 '하늘체험' 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제시한 한국인의 종교체험 가운데 하나인 '힘에의 지향' 으로 보고 싶다.

한국인은 서양문명의 종교인 기독교를 그 힘 때문에 무작정 좇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한국인들이 같은 유신론적 뿌리를 갖고 있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나는 한국인들의 하늘체험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한국인들은 그 '높은' 하늘보다는 무신 (巫神).산신.성주신 같은 작은 신 (lesser gods) 을 더 가까이 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엔 기독교와 같이 모든 존재를 총괄하는, 즉 현실을 초월한 보편적 최고 원리로서의 신 (God) 에 대한 개념이 미약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기독교의 수용도 하늘체험보다는 서구문명이라는 거대한 힘에의 경도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종교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아쉬움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다소 낯선 개념들이 군데군데 나온다는 것. 때문에 한편으론 일반독자들이 우리시대의 가장 탁월한 종교학자의 글을 멀리할까 두렵다.

그리고 예화를 적절히 사용했다면 설명이 훨씬 더 쉽게 와닿았을 것이다.

최준식 (이화여대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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