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F, 요술방망이서 애물단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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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요술 방망이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주가연계펀드(ELF)를 두고 하는 말이다. ELF는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는 효자 상품으로 한동안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주가 폭락을 거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ELF가 내건 주가 등락 조건이 연이어 깨지는 바람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80% 이상 손해본 ELF가 나올 정도다.

9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만기가 돌아온 86개 ELF 가운데 절반이 넘는 45개가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원금의 절반 이상 날아간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상품은 하나UBS자산운용의 하나UBSSKT하이닉스주가연계파생1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중순 만기가 돌아온 이 상품은 수익률 -82%를 기록했다. 2년에 걸친 운용 기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에게는 원금의 18%만 돌아갔다.

-70%대와 -60%대를 기록한 ELF도 각각 9개, 12개로 조사됐다. 나머지는 -50%대(14개), -40%대(7개), -30%와 -20%대(각 1개)였다. 반면 이익을 본 상품의 수익률은 손해본 상품의 손실률에 비해 미미했다. PCA친디아포커스파생Ⅰ-1·2가 각각 62%와 37%의 수익률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는 10%대나 10% 미만의 수익률에 그쳤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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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폭풍으로 주가가 폭락할 때 ELF의 안전장치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대개의 ELF가 기초자산으로 하는 종목의 주가가 30~4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때 40% 이상 주가가 떨어진 종목이 속출하는 바람에 ELF에서 대규모 손해가 난 것이다. 예컨대 80%에 가까운 손해를 본 미래에셋맵스의 투스타파생상품5는 기초자산인 포스코와 하이닉스 중 한 종목이라도 40% 이상 주가가 떨어지면 하락률이 큰 종목에 따라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였다.

이번 조사 결과 ELF 상품 구조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상품을 구입하면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됐다. 손해가 컸던 ELF의 대부분은 투자자에게 불리한 상품 구조로 만들어진 게 많았다. 예컨대 하나UBSSKT하이닉스주가연계파생1의 경우 기초자산인 SK텔레콤과 하이닉스의 주가가 상품 출시 후 일정 기간에 따라 10·15·20% 이상으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7.5%의 수익률을 돌려주는 구조였다. 문제는 두 종목 중 하나라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란 점이다. 그런데 내수 관련주인 SK텔레콤과 수출 관련주인 하이닉스의 주가는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두 종목 모두 동일한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았고, 이는 결국 대규모 손실로 연결됐다.

또 ELF는 주식이나 일반 펀드와 달리 만기가 정해져 있어 수익률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이수진 제로인 펀드 애널리스트는 “ELF는 상품 구조상 손절매하기도 쉽지 않다”며 “한번 구입하면 중간에 사후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가입 전에 신중히 상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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