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미국-EU 자동차협상단의 오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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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결정됐다는 발표가 나온 15일 오후 과천 정부2청사에서는 정부 관계자와 미국 자동차업계 대표간에 한국 자동차시장 개방문제를 놓고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앤드류 카드 미 자동차제조업체협회장과 카밀 블럼 유럽연합 (EU) 자동차제조업체협회 사무국장은 이날 재정경제원등 5개 부처를 돌며 한국 자동차시장의 추가개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유럽의 개방요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날 면담에서 특히 카드회장은 고압적이고 오만불손한 태도로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을 다그쳤다고 한다.

우리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한국 자동차시장은 외제차 점유율이 0.8%에 불과한 지극히 폐쇄적인 시장" 이라고 몰아붙였다.

"점유율만으로 시장 개방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소형차 비중이 92%인 한국시장에서 대형차만을 팔려는 미국의 마케팅에도 문제가 있지않느냐" 고 우리측이 반박하자 "그런 얘기 나올 줄 알았다" 며 묵살 일변도였다고 한다.

"병행수입 (그레이 임포트) 을 감안하면 실제 점유율은 그보다 훨씬 높다" 는 우리측 설명에 대해 "한국정부는 왜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있느냐" 며 마치 미국 정부대표나 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간에 이미 양해가 된 '소비절약운동' 문제까지 다시 들먹이며 한국정부를 비판했다고 한다.

옆에서 맞장구를 쳤던 블럼 EU자동차협회사무국장도 "교육세같은 이상한 세금을 왜 자동차에 매겨 값을 올리고 있느냐" 며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관계자와 만날 때마다 설전을 벌였고 일부 부처에서는 감정섞인 고성 (高聲) 이 오가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문제해결을 위해 온건지, 도발하러 온건지 모르겠다" 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이들의 방한 (訪韓) 은 최근 미 자동차업계가 한국에 대해 슈퍼 301조를 적용해 달라고 미 정부에 요구한 사실과 관련, 이를 밀어붙이기 위한 사전절차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국산 컬러TV 반덤핑조치를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하는 등 우리정부의 통상전략도 공세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가 맞대응에 나선 만큼 미국의 대응도 더욱 거세질 것이고 그럴수록 대응논리를 가다듬어 차분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 당국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들을 상대했는지 궁금하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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