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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 깬 공사 여생도들 첫 학기 애환 엿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하늘아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 전투기조종사를 꿈꾸는 앳된 여성들의 외침이다.

'금녀의 집' 에 사상 처음으로 들어선 공군사관학교 1학년 여생도 19명은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속에서도 비행감각을 익히기 위한 패러글라이딩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육.해.공군사관학교중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에게 문을 연 공사에 입학한 이들이 방학기간에도 강도높은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것. 공군내 모든 직종에서 성별구분을 하지 않겠다는 공사의 방침에 따라 입시전형의 신체조건이나 훈련과정도 남자생도와 똑같았다.

중대편성도 마찬가지여서 이들은 8개 중대에 무작위로 배치됐다.

우리나라 군사훈련 역사상 최초로 남녀가 함께 훈련을 받는 셈. 제식훈련과 총검술.구보.사격은 물론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가스실에서 '눈물의 노래부르기' 등 기초군사훈련과 팔굽혀펴기.쪼그려뛰기등 유격장의 다양한 체력단련과정에서도 단 한 번의 예외가 없다.

"승마.수영.골프.행글라이딩.비행기 조종등을 할수 있다는 말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공사에 지원했다" 는 편보라양 (19) 은 "몇번이나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전투조종사라는 새로운 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고 털어놨다.

어려운 훈련이지만 조국과 민족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희망이 이들을 자신감 넘치게 한다.

임수영양 (19) 은 훈련일기에 "사격 20발중 17발을 명중시켰다.

훈련받은 대로 자세를 취하고 훈련받은 대로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할때의 그 통쾌한 기분. 그 통쾌함이 다시 자신감을 얻게 했다" 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의 가혹한 훈련과 기합은 역시 견디기 어렵다.

"훈련지도를 담당한 선배가 너무 미워 죽이고 싶기까지 하다" 고 털어놓는 이들이지만 '훈련을 이겨내는 것만이 선배를 이기는 길' 이라는 패기가 지옥 훈련 (? ) 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대학에 갓 들어간 새내기들이 화장이나 다이어트등 외모에 갖는 관심은 예비 '보라매' 라고 예외는 아닌 듯. 하지만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공사안에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관심의 초점이 되는 만큼 행동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물론이다.

한 여생도는 낮에 화장을 하고 다니기가 쑥스러워 일과가 끝난 밤에 혼자 화장을 하고 잠을 자다가 갑자기 불려나와 단체기합을 받는 도중 마스카라가 흘러내려 동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단다.

또 "토요일 특박을 나가 파마를 하고 왔더니 선배동료 할 것 없이 모두들 저만 쳐다 보는데다 어떤 이들은 '폭탄 맞은 메추리' 라고 놀리기도 해 퍼머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더군요. " 임수영양 (19) 의 말이다.

'우아한 모습' 을 지키기 어려운 기합을 받을 때도 이들은 고민이다.

김봄시내양 (19) 은 "처음엔 아무리 심한 기합을 받아도 여자임을 포기하지 않기위해 지나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잠깐씩이라도 머리를 쓸어올리거나 땀을 닦거나 했어요. 하지만 곧 어떻게 버티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 돼버려 머리따위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져 버렸지요" 하고 고백하기도. 처음엔 여생도들을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던 남자동기생들도 "식판에 넘치도록 담긴 밥과 반찬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대고 아침 점호시간에도 부스스한 머리에 눈곱을 달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여생도가 이성이 아닌 동기생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고 했다.

반세기만에 금녀 (禁女) 의 벽을 깬 이들의 애환과 꿈은 최근 책으로까지 발간됐다.

'날아라 메추리' (시공사)가 바로 그것. 메추리는 보라매가 되기에는 아직 미숙한 공사 1학년생을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책의 수익금은 공사 발전기금으로 활용된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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