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의문화유산>여수 진남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도시마다 그 지방을 상징하는 건물이 하나씩 있듯 진남관 (鎭南館) 은 여수를 대표할 만하다.

세계 어느 미항 부럽지 않다는 항구이자 공업도시로 활기 넘치는 여수는 조선초 지금의 해군사령부라 할 수 있는 전라좌수영이 설치될 정도로 해상 국토방위의 요지였다.

임란 도중에는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 됐다.

당시 전라좌수영 옛자리에 서 있는 건물이 진남관. 임금이 사용하던 궁을 제외하고 지방에 세워진 목조 건축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가장 큰 건물이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길이 75.높이14)에 총 75칸 규모며 둘레 2가 넘는 굵직한 기둥만 무려 68개에 이른다.

본래 이 자리엔 전라좌수영의 중심 건물인 진해루 (鎭海樓)가 들어서 있었으나 정유재란때 불타버리자 선조 32년 (1599) 통제사 이시언이 객사 (客舍) 용도로 진남관을 지었으며, 숙종 44년 (1718) 재건된 이후 여러차례 중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 전후엔 학교로 사용, 원형이 많이 훼손됐는데 1959년 보수때 나중에 보수된 것이 분명한 벽체만을 뜯어냈다.

진남관이 분명 객사 용도의 건물이었음에도 수군의 지휘본부로 쓰였던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수천만 군사의 사기를 북돋우며 진두 지휘하는 장군의 호령같이 생각되는 외형 때문이다.

진남관 앞마당에 서 있는 석인상은 이순신 장군이 전술적으로 세운 '여수 돌사람' 이다.

왜군은 돌사람이 있는 곳으로는 공격해오지 못하고 돌사람이 없는 곳으로만 공격하다가 매복에 걸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원래 일곱이었는데 하나만 남아있다.

돌산대교에서 여수시내 쪽을 바라보면 언덕 높이 올라선 진남관의 늠름하고 우람한 모습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진남관이 사는 일에 고단해진 여수사람들, 그럴 때마다 여기 진남관에 와서 살아갈 기운을 얻어가면 좋을 것같다.

큰 건물이 주는 그만한 격려가 있으니. ◇가는 길 = 여수시내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돌산도로 가다보면 서교동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의 중앙로를 따라 여수경찰서 쪽으로 조금 가면 길 왼쪽에 진남관이 있다.〈김효형 문화유적답사회 총무 사진 = 김성철〈사진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