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학원폭력과 부모노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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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식에 대한 열정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 바로 한국의 부모들이다.

'내 자식만 잘 된다면 어떤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는 게 한국 부모들의 정서다.

우스개같은 실화 한 토막. 계란 값이 비쌌던 50년대 말, 날마다 계란 프라이를 해 아들의 도시락을 싸주던 엄마가 있었다.

어쩌다 계란 프라이가 집 식탁에 오를 때도 엄마에게는 자기 몫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는 아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계란을 싫어한단다.

" 그 아들이 자라 결혼을 했다.

어느 날 부인이 계란 프라이를 엄마의 식탁에 놓아드리는 걸 보고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는 계란을 싫어하셔. " 하지만 이미 계란 프라이는 어머니의 입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입 속에 넣은 것이라도 자식이 먹고 싶다면 뱉어 먹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가 바로 한국의 부모다.

어디 먹는 것뿐이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돼도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도맡아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돼도 운동화 한번 빨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결혼한 자식이 유학을 가도 학비며 생활비를 모두 대줘 자식이 편안하게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 '부모 노릇' 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놀림을 받았다거나 야단 맞았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더욱이 매라도 맞았을 경우에는 '눈이 뒤집히는' 일이 된다.

정부가 학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설 정도로 이제 중.고생들의 교내폭력은 사회적 화두가 돼버렸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3년째 학원폭력근절을 지시하고 있고, 그 와중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학원폭력은 끝을 모르는채 늪 속으로만 빠져들고 있다.

학원폭력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식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 부모들의 빗나간 열정도 한몫 하는 것같다.

교내폭력이 문제가 되면서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기 자식이 피해학생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가해학생의 부모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바로 이같은 생각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내 아이만 옳고 다른 아이는 틀렸다고 여기게 만들어 서로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학교 선배에게 반말한 것이 화근이 돼 집단구타당했던 한 여학생이 끝내 반 아이들에게까지 따돌림당해 원치 않았던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던 사건도 부모의 대응이 서툴렀던 탓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가 거둔 집단괴롭힘 사건방지 성공담은 시사하는 바 크다.

집단 캠핑때 급우 한명을 괴롭혀 주기로 한 악동들 (? ) 의 계획을 한 학생으로부터 귀띔받은 교사는 희생양으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를 알려주는 한편 교내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사까지 고려했던 어머니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이라며 버티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입술이 타들어갈 정도의 마음고생을 겪으면서도 학교측의 대책을 지켜봤다.

캠핑때 다른 핑계를 대며 악동들을 한데 모아 벌을 줌으로써 피해학생이 생기지 않게 하자는 교사들의 작전은 성공을 거둬 '폭력 학생' 이 될 뻔했던 악동들도, '피해 학생' 이 될 뻔한 당사자도 다른 학생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즐거운 학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처벌위주의 행정력만으로는 학교폭력을 결코 뿌리뽑을 수 없다.

부모들도 달라져야 한다.

지켜보면서도 안보는듯, 안보는듯 하면서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청소년 교육이라고 일선교사들은 얘기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부모 노릇도 '뜨거운 가슴' 보다 '차가운 머리' 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됐다.

홍은희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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