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미국.유럽은행 남미서 대출 세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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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베네수엘라의 철강회사 시벤사SACA의 자금담당 최고경영자인 네일 마로이의 사무실에는 요즘 "우리 은행 돈 좀 쓰라" 며 들르는 미국 및 유럽 은행 간부들이 매달 10여명에 이른다.

그는 이미 3억달러에 가까운 신용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대출받을 필요가 없다고 해도 은행가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남미 정부나 기업들에 대한 유럽 및 미국은행들의 이같은 대출붐은 지난 70년대말 및 80년대초의 대출열풍을 능가할 정도다.

당시 대출붐은 82년 멕시코가 채무불이행에 빠지고 중남미 전체가 경제위기에 몰리면서 많은 은행들이 수십억달러의 대출을 대손처리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었다.

멕시코 페소화위기가 이 지역 금융시장을 뒤흔든지 3년도 안된 지금 이같은 대출세일은 그 당시와 같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한 은행분석가는 최근의 대출붐에 대해 "남미의 끝없는 자본수요와 새로운 수입원을 찾는 은행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 라고 말한다.

브라질에 대한 미국은행들의 대출규모는 지난해말 현재 1백68억달러로 1년전에 비해 거의 25%나 늘었다.

중남미 전체로도 같은 기간동안 대출이 18% 늘었다.

올 1분기에만 미국과 유럽계은행들의 신규대출이 41억달러에 이르는등 이 지역에 대한 대출증가 추세는 여전하다.

대출붐과 함께 이자율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지난해 4월 리보 (런던은행간 금리)에 3.5%포인트를 얹어줘야 했던 프리미엄이 올 4월에는 1.5%포인트까지 낮아졌다.

은행들은 또 지난 80년대초 주류를 이뤘던 정부에 대한 차관 대신 민간기업에 대한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이 많아지면서 엄격했던 대출심사조건도 완화되고 있다.

은행가들은 중남미가 82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자세다.

지난해말 현재 이 지역의 전체 외채는 6천5백65억달러로 80년에 비해 1백55%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중남미의 수출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증가했다.

외채원리금 상환부담은 지난해말 전체 수출의 30%로 80년의 36.6%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또 한가지 다른 점은 이제 상업은행들이 이 지역의 유일한 대규모 자금줄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권거래와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금조달 경로가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올 1분기만해도 투자가들은 1백20억달러어치의 라틴계 채권을 인수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세배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중남미에 경제위기가 또 닥칠 경우 채권은행들은 상당한 손실을 볼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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