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가는길>3. 빈약한 사회간접자본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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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뉴델리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여기저기 구덩이가 파여 자동차는 계속 덜컹거리고 차선도 거의 보이질 않았다.

중앙선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 불빛도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수도 뉴델리에서 세계 7대 건축물중 하나라는 타지마할 묘가 있는 아그라까지 가는 도로는 더했다.

여기저기 움푹 패여있는 것은 물론 가끔씩 아예 한 구간 전체의 포장이 없는 경우도 많다.

또 1차선뿐인 구간이 많아 중간에 고장난 차량이라도 있으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 가장 먼저 국제화된 경제중심지 뭄바이 (옛 봄베이)에서 약 1백80㎞ 떨어진 공업도시 푸나로 가는 산업 고속도로도 사정이 나쁘기는 매 한가지다.

다른 도로보다 차량이 많긴 하지만 평일 아침 일찍 출발해도 5시간은 잡아야하는 길을 '고속도로' 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전력 사정도 문제다.

뉴델리 시내 고층 빌딩이라도 평일 낮 근무시간중 전기가 나가기 일쑤다.

이 때문에 사무실이나 가정에서는 전기가 나갔을 때에 대비한 휴대용 손전등이 필수품이다.

전력 사정이 나쁘다보니 밤에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불빛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만이 언뜻언뜻 보일 뿐이다.

인도에 진출한 기업을 방문했을 때 서울로 국제전화를 걸겠다고 하면 큰 실례가 된다.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나게 비싸 인도 주재 기업인들은 꼭 필요한 전화가 아니면 국제전화를 하지 않고 한국에서 전화를 걸도록 한다.

뉴델리의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서울로 5분정도 통화를 하면 전화요금이 5만원쯤 나온다.

물론 열악한 통신 설비때문이다.

인프라 사정이 이처럼 나쁘다보니 인도 경제의 활력은 인프라 구축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진해운 뭄바이 지사의 최충국 사장은 "인도의 항만 시설은 현재 교역규모를 가까스로 충당할 정도" 라며 "항만을 늘리지 않고서는 교역을 늘리려야 늘릴 수도 없는 상황" 이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도의 인프라 구축은 한마디로 지지부진이다.

필요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 경제기획청에 따르면 지난 91년 경제개방 이후 8차5개년 계획기간 (92~96년) 중 인프라 구축은 그 이전보다 오히려 위축됐다.

경제개방이후 인도 정부가 추진하던 인프라 구축을 외국 기업 유치로 돌리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실적이좋지 않았기때문이다.

일찍이 인도에서 발전소 건설에 참여해온 한국중공업의 김기범 이사는 "최근에 와서야 인도 정부가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며 하지만 "인도의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가진 외국 기업은 많지만 건설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는 외국기업들이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가급적이면 BOT방식 (건설후 일정기간 시공자가 운영한뒤 넘겨주는 방식) 으로 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외국 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투자자본을 회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예컨대 봄베이 - 푸나 산업고속도로의 경우 고속도로 통행료가 8백㏄ 경자동차의 경우 8루피 (약 2백원) 인데, 이정도 요금을 받아서는 고속도로 건설에 들어간 돈을 벌충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인도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는 외국 기업들은 공사대금이 보장되는 공사에만 주로 관심을 보인다.

뉴델리.뭄바이 = 김형기 기자

<사진설명>

인도 뭄바이에서 1백80㎞ 떨어진 공업도시 푸나에 이르는 산업도로의 만성적인 체증을 줄이기 위한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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