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효도와 상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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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려말에 편찬된 '효행록 (孝行錄)' 을 보면 고대 중국의 성군 (聖君) 이었던 순 (舜) 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의 아버지는 아내가 순을 낳고 세상을 떠나자 곧 재취해 둘째 아들 상 (象) 을 얻는다.

이때부터 계모는 물론 아버지의 사랑이 온통 상에게만 쏠린다.

순이 장성하자 힘든 일은 모두 순에게만 맡기고, 재산이 순에게 돌아갈 것을 걱정해 순을 죽이려 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래도 순은 효성을 다해 어버이를 받들고 온종일 농사일에만 전념한다.

몸이 쇠약해져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 어느날 참새떼가 몰려오더니 주둥이로 풀을 뽑고 땅을 쪼아 말끔하게 김을 매주는가 하면, 산속에서 코끼리떼가 몰려와 밭을 모조리 갈아주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부모와 동생은 그제서야 순의 효성에 감동해 큰아들 대접을 해준다는 이야기다.

효도가 미물 (微物) 까지 감동시키는데 하물며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겠느냐는 교훈이 담겨 있다.

순이 아버지의 재산을 염두에 두고 효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반대급부' 를 기대하는 효도가 진정한 효도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부모의 은혜를 가리켜 "자식을 낳을 때는 3말8되의 응혈 (凝血) 을 흘리고, 키울 때는 8섬4말의 혈유 (血乳) 를 먹인다" 고 했으니 자식의 어떤 효도가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효도의 개념부터 달라졌다.

몇해전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현대판 고려장' 풍조가 그렇다.

멀쩡한 노부모를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장기간 멀리 떠나 있다가 부모를 쓸쓸히 숨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부모를 그처럼 방치하는 자식들은 훨씬 줄어들는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의탁해 노년을 보내는게 공식처럼 돼 있었으나 요즘엔 가급적 죽을 때까지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가 많은 것도 그 까닭이다.

한 경제연구소의 상속행태 등에 관한 조사도 그런 풍조가 팽배해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법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노후를 보살피는 자녀에게 상속하겠다는 응답이 67.8%에 이른 것이다.

재산 가진 부모라야 효도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 각박한 세태의 한 단면을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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