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오늘을 미리 본’ 100명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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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희망의 근거
사티시 쿠마르·프레디 화이트필드 엮음
채인택 옮김, 메디치미디어, 436쪽, 1만8000원

 리처드 세인트 바브 베이브(1889~1982). 위키피디아엔 ‘포리스터’(forester)며 ‘환경 운동가’라고 소개돼 있다. 포리스터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사전엔 ‘나무를 돌보는 사람 혹은 새로 심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삼림학자를 뜻하기도 한다). 베이브는 1920년대에 삼림학 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아프리카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녹색 방어선을 설치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벌였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엔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선각자들 100명을 소개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발간된 영국 녹색운동 잡지인 『리서전스』(Resurgence)가 소개해온 숱한 선각자들 중에서 사회적·생태학적·영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이들을 추린 것이다. 공통분모는 평화와 생태학·협력·상호존중·자연세계와의 조화의 관점에서 앞을 내다보았다는 점이다.

사회적 선각자들 명단엔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 아웅산 수치 외에 슬로 푸드 운동을 불러일으킨 카를로 페트리니도 있다.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페트리니는 “즐거움은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며 자기 철학의 핵심을 ‘즐거울 권리’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배문화를 ‘칼의 문화’라 비판하며 평화의 ‘파트너십 모델’을 주장한 리안 아이슬러, ‘반문화’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속도를 낮추고 규모를 줄이고 탈집중화하고 민주화하라”고 조언한 시어도어 로작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로 ‘생각의 대전환’을 외쳐왔으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물들을 새롭게 접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독불장군’은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사슬처럼 생각의 바통을 잇고, 얼키고 설킨 그물코처럼 서로 영감을 주고 받았다. 특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간디의 큰 그림자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말 제목 그대로 ‘희망의 근거’는 과연 있는 걸까.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대답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겠다. 원제 『 Visionaries of the 20th century: A Resurgence Anthology』(2006).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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