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오프라, 그녀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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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제니스 펙 지음, 박언주 외 옮김
황소자리, 496쪽, 1만9800원

책의 성격은 원서의 부제에서 잘 드러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위한 문화 아이콘’이니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번역서의 부제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과는 딴판이다.

TV 토크 쇼의 사회자로 출발한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의 여왕’이란 수사로는 부족하다. 문화권력 수준을 넘어 정치·경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21년째를 맞은 그의 쇼는 매주 4600만 명의 미국인이 시청하며 한국을 포함한 134개국에서 방송된다. 그의 북 클럽에서 추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며 ‘오프라 매거진 O’는 창간 일 년도 안 돼 매달 250만부의 판매를 기록했다. 미국 언론에선 그를 ‘선지자’라 칭하며, “고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친근하면서도 집요하게 캐묻다”란 의미의 ‘오프리하다’란 동사가 쓰일 정도다.(책 제목도 10년 전 뉴스위크 지가 21세기는 오프라의 시대라 전망한 데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윈프리 찬가가 아니다. 그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언론학 부교수인 지은이가 꼼꼼한 조사와 학술적 이론을 무기로 ‘오프라 현상’을 해부한 미디어비평서다.

“성격파탄자, 얼간이, 변태들의 퍼레이드” 또는 ‘헛소리 토크쇼’로 치부되던 토크쇼는 윈프리가 1994년 “이 세상을 좀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작업에 착수할 것을 선언한 이후 극적으로 변한다. 영성 심리학자를 자처하는 가수 마리안 윌슨을 출연시키는 등 주요 시청층인 여성들을 “교화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밝은 오프리’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윈프리 쇼가 90년대 중반 ‘제니 존스 쇼 살인 스캔들’로 시작된 TV토크쇼 비난공세에서 벗어나 홀로 비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윈프리가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자이긴 하지만 ‘영혼의 상품화’에 성공한 신자유주의 전도사라고 꼬집는다. 심리학과 정신요법의 퓨전이라 할 ‘역량 강화’를 내세워 인종차별, 빈부격차, 여성 차별 등 모든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 차원의 문제 또는 심리적 문제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성우월주의’(1987년 1월 14일 방송)에서는 윈프리가 남성 패널들에겐 46회의 발언권을 준 반면 여성 패널들에겐 9회만 주었다는 식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또 여성들간의 협조문제에 대해서는 “전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여자들은 대부분 성미가 못 됐다고 말이죠”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생활고로 취업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문제에 대해 “전 그런 압박을 전혀 못 느껴요. 제가 어디가 모자란 걸까요?”라고 몰아붙인 사례를 들기도 한다.

1996년 시작해 ‘시청자 대중’을 ‘독자공동체’로 만들었다는 극찬을 받은 윈프리의 북 클럽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지은이는 선정도서의 대부분이 문제가정에서 태어나 갖은 고난을 겪고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여성 이야기라는 점을 든다. 또 서평과 독서토론 지침을 제공하고 출연진 및 자신의 해석 위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등 독자에게 ‘통제’를 가한다고 비판한다.

사실 책은 조금 딱딱하다. 그리고 이른바 ‘오프라 현상’은 국내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소재다. 하지만 미디어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나아가 어떻게 오용되는지 들여다 보는 데 딱 맞춤인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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