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벌>23. 중국 현대사를 바꾼 '송씨 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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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현대사, 나아가 20세기 전체 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벌을 꼽으라면 단연 '쑹가 (宋家)' 를 말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의 국부 쑨원 (孫文) 의 아내 칭링 (慶齡) , 그리고 장제스의 아내 메이링 (美齡) , 중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로 꼽히는 즈원 (子文) 으로 대표되는 宋씨 집안은 누대에 걸친 엄청난 재산과 영향력으로 차라리 하나의 왕조 (王朝) 를 이뤘다고 일컬어진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른바 '宋씨왕조' 다.

'왕조' 로 표현될 만큼, 宋가의 구성원은 중국의 현대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우선 칭링의 남편 쑨원은 중국의 국부로 아직까지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며, 막내딸 메이링의 남편 장제스 또한 중국 현대사의 큰 자락을 움켜 쥐었던 인물이다.

이 宋씨 집안의 발흥 (勃興) 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건너가 미국 문물에 일찍 눈을 떴던 이들 宋씨 6남매의 부친 찰리 宋에 의해 비롯된다.

광둥성 (廣東省) 출신으로 원래 이름이 한자수 (韓嘉樹) 로 알려져있는 찰리 宋은 어린나이에 출국, 동남아 친척집에서 일을 돕다가 다시 한 친척의 양자로 입양된 뒤 미국 보스톤으로 거처를 옮겼다.

미국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마친 찰리 宋은 중국선교의 임무를 띠고 귀국, 처음에 중국어 성경 출판에 손을 댔다.

이재에 뛰어 났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외국의 과학.역사.문화 서적 출판에 눈을 돌린다.

남들이 생각조차 낼 수 없었던 시기에 이 분야 사업에 뛰어든 찰리 宋의 세속적인 성공은 사전에 미리 보장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출판업자와 기업가, 또 유명한 목사로 자리 잡은 찰리는 청조 (淸朝) 를 뒤엎고 혁명을 꿈꾸고 있었던 쑨원과 역사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그는 쑨원의 비밀결사를 위해 자금 모집역을 수행하면서 혁명의 대열에 가담했다.

찰리는 부인 니궤이전 (倪桂珍) 과의 사이에 장녀 아이링 (靄齡) , 차녀 칭링을 얻은 뒤 1894년 12월 첫 아들 즈원을 두었다.

이어 메이링을 낳고 밑으로 아들 즈량 (子良) 과 즈안 (子安) 을 얻었다.

3남3녀의 이들 宋씨 왕조 왕족들은 이후 중국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흐름속에 주인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먼저 아버지 찰리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아이링은 쑨원의 비서로 일하다가 부친의 소개로 산시성 (陝西省) 금융재벌 출신 쿵샹시 (孔祥熙) 와 만나 결혼했다.

뛰어난 현실주의적 감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아이링과 孔은 즈원에 버금가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칭링은 언니 아이링에 이어 혁명가 쑨원의 비서로 일하다가 결국 아버지 친구인 쑨원의 아내가 된다.

그녀는 宋씨 3자매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인물로 국민당 장제스 정부가 대만으로 넘어간 뒤에도 대륙에 그대로 남아 국가 부주석직에 올랐다.

중국현대사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장제스 (蔣介石) 도 이 宋씨 왕조의 주요 구성원이다.

蔣은 찰리 宋의 3녀 메이링과 결혼한다.

1921년 찰리 宋이 베푼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 메이링을 처음 만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다. 메이링은 宋씨왕조에서도 간판급 스타다.

쑨원에 이어 국민당을 이끌면서 절대 통치자의 위치에 올랐던 장제스의 아내로서 蔣의 대만통치 기간내내 부귀영화를 누렸다.

宋씨 3자매에 못지 않는 또 한 사람의 주역은 장남 즈원이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유학한 뒤 국민당정부의 외교부장과 재정부장을 역임하면서 미국의 차관공여에 깊이 간여했던 즈원은 브리태니카백과사전에 세계 제1의 부호로 실렸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미국의 대 (對) 중국 차관공여에 개입하면서 일부 차관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당시 미 대통령 트루먼은 "38억달러 가운데 7억8천만달러를 떼먹은 저들은 뉴욕에서 부동산이나 사들이고 있다" 고 비난하기도 했다.

장제스 일가의 쇠락과 마찬가지로, 한 때 아시아 최대 가벌을 이뤘던 宋씨 왕조도 결국 영고성쇠 (榮枯盛衰) 의 운명적인 틀을 거역할 수 없었다.

장제스 일가가 절대권력에서 밀려나 영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거대 가벌 또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상태다.

유광종 기자

<사진설명>

1917년에 찍은 '쑹가' 가족사진. 가운데줄 왼쪽부터 아버지 찰리 쑹, 어머니 니궤이전. 앞줄 왼쪽부터 장녀 아이링, 장남 쯔원, 막내 쯔안, 차녀 칭링. 뒷줄 왼쪽부터 차남 쯔량, 막내딸 메이링.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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