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엿보기>5. 끝. '똥'을 알면 비극은 없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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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아웃풋 (糞)에 대해 유별나게 집착하는 나라를 꼽는다면 독일을 제쳐놓을 수 없다.

독일인은 곧잘 결과물에 대한 정밀탐색에 돌입한다.

색상.형태.경도 (묽고 되기).냄새 등등에 대해 온 정성을 다해 관찰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독일에선 전형적인 양변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공중변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신 형태의 좌변기를 선호한다.

결과물이 중간거점에서 일정 시간 머무르도록 한 것 말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선 유난히도 똥에 관한 욕설.유머가 넘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피터 콜릿이 '습관을 알면 문화가 보인다' 에서 소개한 미국의 민속학자 앨런 둔드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변과 배설에 대한 강박관념은 독일 문화 전체에 번져 있으며, 무시로 독일의 조크와 수수께끼.금언에 나타난다.

" 예컨대 독일인들은 화장실에 대해 '천둥 치는 방' 이니, '풍덩 소리 나는 방' 이니 사뭇 직설적인 표현을 태연하게 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손 씻는 방' 이니 '화장 고치는 방' 이니 '근심 푸는 방' 이니 하며 완곡어법을 쓰길 좋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의 경쟁상대는 일본이다.

귀족용 변기 구멍의 너비가 평민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좁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귀족용은 15㎝ 내외, 평민용은 24㎝ 내외다) .협구 변기의 존재는 일본 귀족들의 배설 습관이 엄격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다.

생각해 보라! 구멍의 너비가 좁으면 좁을수록 '스트라이크 존' 도 좁아지게 마련 아닌가.

화장실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정은 현대에 와서 도를 더하고 있다.

일본 유수의 한 건설회사에서 정원 (庭園) 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도입한 가상현실 체험 테마화장실을 설치했다는 소식과, 도쿄 아타미의 한 레스토랑에서 전망 좋은 곳을 골라 페어 글라스 (바깥에서는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유리) 로 사방을 두른 이른바 극장식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정보도 잇따른다.

아득한 시원의 세계로 돌아가 마치 깊은 숲속이나 들판에서 방뇨.방분하는 듯한 호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마법의 페어 글라스를 통해 자연의 무쌍한 변화와 인간의 행동거지를 관찰하면서 쌓이고 쌓인 근심을 훌훌 떨쳐버릴 수 있다는 점은 생각만으로도 짜릿할 정도다.

세계에서 최초로 화장실 협회를 만들고 화장실학을 태동시킨 나라, 11월10일을 화장실의 날로 정하고 국제 심포지엄의 개최를 주도한 나라, 해마다 아름다운 화장실 선발대회를 개최해 '화장실 베스트 10' 을 선정.발표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도 예사롭게 보아넘기기 어렵다.

일본은 누가 뭐래도 화장실 문화에 대해 유별난 나라인 것이다.

화장실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갖거나 불만을 느끼는 유아는 바로 독일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지적한 항문기 (심리발달 단계로 2~3세 전후의 '똥.오줌 가리기' 에 해당)에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경우다.

도가 지나치면 항문기에 고착된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나. 다시 말하면 결벽증처럼 극단적으로 청결을 추구하거나 파괴적이며 광포한 항문기형 인간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세상에서 유례없이 똥과 화장실에 대해 집착하는 나라들이다.

이러한 유별성에서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의 냄새를 맡는다면 논리의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나란히 인류 최대의 재앙인 제2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였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된다.

세상은 여전히 힘의 원리가 통하는 동물의 왕국이다.

무릇 똥을 알면 더 이상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은 없는 법이다.

<시리즈 끝> 손일락 청주대 교수 호텔경영학과

◇ '손일락의 화장실 엿보기' 를 읽고 전화 제보를 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변기와 화장실에 관한 최신 정보와 책자를 보내준 조의현선생과 화장실 설비 전문업체 한국바토와의 이만휘대표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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