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론>금기에 도전하는 파이어니어는 언제나 존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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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벽을 무너뜨리는 파이어니어들은, 흔치 않지만 언제나 존재한다.

이들은 무기력해진 관습 및 시대착오적인 금기와 대면하는 운명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예술의 영역에서는 이 '본능적' 이라는 수식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머리' 로 고안되고 '계산' 으로 산출된 전복 (顚覆) 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많은 이들을 한순간 현혹시키거나 극히 소수의 맹신자들만을 오랫동안 기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라 해야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세계 대중음악이 그 이전까지의 음악적 아성을 해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음반과 대중매체라는 무기를 앞세운 자본주의의 강인한 생산력이 몇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했던 개척자들을 집중적으로 출현시킨

데 있다.

댄스홀의 배경음악으로 안주하던 재즈를 격렬한 독창성의 난투극으로 이끌며 모던 재즈의 시대를 이끌어낸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 또 3분짜리 '유행가' 라는 틀을 깨고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임을 장난스럽게 증명해보인 비틀스.

이들을 정점으로 파이어니어 계보학은 이윤동기의 시장논리 안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켰고 예술가들의 자기만족을 넘어서서 수용자들의 무의식적 관습에 지속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왔다.

이처럼 대중음악이 대중음악일 수 있는 진정한 기준은 대량생산의 매너리즘 속에서 현상유지의 경향과 충돌하는 자기혁신 에너지의 생성에 달려있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시즌이 열렸다.

댄스 뮤직의 대표적인 주자들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며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룰라를 벗어나 솔로로 출사표를 던진 김지현, 작년 시즌의 패자 (覇者) 클론, 복고적인 사운드와 패션으로 십대시장 연착륙에 성공한 영턱스 클럽, 그리고 발랄하며 경쾌한 이미지를 앞세워 정상권으로 진입한 UP와 새로운 도전자격인 젝스키스에 이르기까지 이 리스트는 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불행한 것은 이들의 앨범에서 자신을 넘어서려는 공격적인 의욕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들이 신작을 준비하면서 흘린 나름대로의 피와 땀은 그저 예전에 성취한 성채의 기득권을 유지.보수하려는 데 쓰이고 말았다.

이런 제자리 걸음으로는 90년대 댄스 뮤직의 영웅들이 확장한 시장의 규모조차도 유지하지 못할 것임이 거의 자명하다.

동어반복의 산물에 대해 대중의 구매동기는 오그라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멈출 수는 없다.

댄스 뮤직이 주류의 패권을 획득한 지 고작 4~5년. 무엇이 대중음악의 주요한 본질 중의 한 축인 댄스 뮤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지를, 과연 어떤 메커니즘이 우리의 댄스뮤직을 소외로 내모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댄스 뮤직을 한철 '진하게' 쓰고 버리는 오락적 소비재로 간주하는 팽배한 무의식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

이 게임의 법칙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TV의 단말마적인 프로그램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객관성' 을 담보로 가수요를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전체 음악문화를 오직 하나의 주류 어법으로 몰고 가는 '순위 프로그램' 은 자신의 존립 근거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할 의무가 있다.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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