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명분주며 절묘한 타협 - 금융개혁 수정안 주요내용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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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래도 불합격이냐?”

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과천 재정경제원 청사에서 수정안을 발표한후 이경식(李經植)한국은행총재가 기자들에게 던진 반문이다.李총재의 표정은 밝았다.이번 만은 자신이있다는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10일 발표된 정부의 수정안은 사실 한은이 집요하게 주장해온'중앙은행 독립'부분을 집중 보완한 것이다.그동안 안팎으로 궁지에 몰렸던 李총재가 자신감을 보일 정도다.한은이 집중적으로 반발했던 금융통화위원회와 한은의 분리문제를'한국중앙은행'이라는 한 울타리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절묘하게 타협을 했다.이런 방안은 사실 지난달 30일 경제원로회의에서도 다수 의견을 차지했었다.

한은총재에게 물가관리 책임을 물어 해임까지 할 수 있도록 했던 부분을 선언적인 규정으로 바구고,지급결제제도 관리기능을 다시 중앙은행에 넘겨준 것도 한은의 요구를들어준 셈이다.재경원장관이 금통위에 의안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도 삭제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수정안은 재경원이 한은의 명분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챙긴 것으로 풀이된다.무엇보다도 한은에서 은행감독원을 떼내 금융감독기능을 단일화한다는 골격은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은의 입장이 다소 애매해졌다.그토록 외쳤던 중앙은행 독립 부분이 상대적으로 보완이된 만큼 이제는'독립투쟁'만을 강조하기가 어려워졌다.노조와는 별도로 한은 직원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오후내내 고민한 것도 재경원의수정안에 대한 대항논리를 개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한은은 이제'통화신용정책 수행에 필요한 감독기능 확보'쪽에 전력을 집중시킬 계획이다.그러나 이 부분에 지나치게집착하다가는'과욕'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어 고민인 것.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무엇보다도 국회에서 법안이 제대로 심의,처리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야당은 물론 신한국당 내에서도'말썽 많은'중앙은행제도 개편안을 무리해서 처리하려는데는 회의적이다.

법안 마련과정에서 법리논쟁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금융통화위원회가 특수공법인인 중앙은행의 내부기구로 바뀜에 따라'통화신용정책을 특수공법인에 맡길수 있느냐'는 법적인 해석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화신용정책은 정부기구가 맡아야 한다는 견해를 보여온 법제처등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 법안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공산도 있다.이래저래 중앙은행제도 개편방안에'합격'판정을 내리기는 아직도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고현곤,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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