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 “유화정책으론 테러와의 전쟁 못 이겨” 오바마에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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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오바마 행정부의 여러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톰 대슐(보건장관) 등 고위 관료 내정자 3명이 잇따라 탈세 문제로 자진 사퇴해 ‘도덕성’을 내세웠던 오바마 정부가 타격을 입은 직후다.

퇴임한 전 정부 인사들은 통상 새 정부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게 미 정계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최고 실세로 평가받던 체니가 부통령 직에서 물러난 지 보름 만에 쓴소리를 쏟아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체니는 이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유화 정책이 테러의 성공 가능성을 훨씬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몇년 안에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나 생물무기를 이용한 테러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과 테러용의자 신문 방식 개선 조치를 언급할 때는 비난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체니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을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만들 것”이라며 “미국민을 보호하려는 사람들보다 알 카에다 테러범의 권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가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며 성가시고 험악한 일이다. 테러범들은 악한 사람들이며, 왼뺨을 맞았다고 오른뺨까지 내미는 식으론 테러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서 심의 중인 경기 부양 법안에 대해서도 “이 법안엔 경기 부양과는 무관한 잡다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행정부 고위직 지명자의 잇따른 낙마와 관련해선 “정치무대에서 위선보다 더 위험스러운 것은 없다. 내가 민주당원이라면 걱정이 앞설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반면 자신이 몸담았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했다. 체니는 “부시 행정부가 애국법, 테러용의자 감시프로그램, 강화된 신문 기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재차 공격받았을 것”이라며 “9·11 테러 후 7년간 미국 본토에 대규모 인명 살상 공격이 없었던 것은 이러한 정책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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