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굶주리는 북한 어린이 구호 국민적 관심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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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6년 세계 빈곤 퇴치의 해를 맞아 유엔은 1인당 국민소득 3백50달러에 미달하는 48개국을 최빈국으로 분류한 바 있다.이들은 대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등지의 저개발국이었다.최근 북한 무역은행의 중앙통계국 자료를 인용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95년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백39달러로 감소했다고 한다.

절대적 빈곤국으로 전락해버린 북한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계층은 어린이들이다.북한 당국은 지난 4월 올들어 1백34명의 어린이가 굶어죽었다고 발표했는데 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또 북한 어린이들은 홍수 뒤에 만연하는 설사와 폐렴.기관지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비타민 부족으로 생기는 괴혈병과 시력상실,그리고 비누 등의 세제 고갈로 인한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89년부터 북한에서 어린이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엔아동기금(UNICEF) 현지 직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5세이하 어린이 2백70만명중 절반 가량이 장기적인 영양실조로 발육부진 상태에 있고 그중 16%에 이르는 약 50만명은 당장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94년 한국 UNICEF가 어려운 나라를 돕는 공여국의 위치로 바뀌면서 우리는 세계 최빈국 어린이의 생존과 발달을 돕기 위한 기금모금사업을 열심히 펼쳐왔다.그러나 지난 4월부터 UNICEF가 벌이고 있는 북한 어린이 돕기 모금캠페인의 수익금은 94년 르완다 내전때 순식간에 모였던 모금 액수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그동안 종교계를 비롯해 각종 시민단체들이 한끼 굶기운동과 보리죽 먹기행사 등을 벌이며 북한돕기를 호소하고 있지만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층은 아직도 종교인.근로자.조합원,그리고 지식인을 포함한 일부에 그치고 있으며 모금액수를 늘려줄 수 있는 중산 보수층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 구호(救護)에 따르는 정치적 조건들이다.남북한이 처한 정치적 현안과 통일.안보 등 피치 못할 우리의 현실은 민간의 자유로운 모금활동에 제약이 되고 있다.우리 정부의 대북(對北)지원 창구 일원화 정책도 수긍은 가지만 수요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획일적 식량배급은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린이나 배급이 시급한 지역으로의 신속한 전달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어린이 성장.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할 경우 그 후유증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통일 한국의 미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우리는 시간이 없다.모두가 북한의 긴박한 상황을 직시하고 우리 동포의 고통을 더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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