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윤리정치 흠집’서둘러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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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내정한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 등 행정부 고위직 후보자들이 탈세 스캔들로 잇따라 낙마하자 즉각 사과했다. 평소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였던 오바마는 3일 5개 방송사와의 릴레이 인터뷰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인터넷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슐 장관 지명자 파문을 ‘오바마 브랜드’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신이 워싱턴의 구태정치 척결과 새로운 정치윤리, 로비 차단을 기치로 출범한 만큼 장관 지명자의 잇따른 도덕성 문제는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충분한 사전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의식했다.

이날 그의 사과는 전격적으로 나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그는 대슐을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 국세청 감독위원회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 성인의 89%가 절대로 탈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AP통신은 전했다. 결국 오바마는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해 대슐의 사퇴를 전격 수용하고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오바마의 사과로 ‘고위 공직자 탈세 파문’은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이미 탈세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상원 인준을 통과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임명 철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도 “가이트너 장관의 세금 불성실 납부 문제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이트너 장관은 2001~2004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할 때 사회보장세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뒤늦게 이자까지 합쳐 4만3000달러를 냈지만 국세청(IRS)을 감독해야 할 재무장관이 세금을 안 낸 건 중대한 결함이라며 청문회에서 집중 추궁을 당한 바 있다.

이날 불거진 대슐 파문으로 당초 TV 인터뷰를 통해 의회에 계류 중인 경기부양책의 신속한 통과를 호소하려 했던 오바마의 의도도 빛이 바랬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도덕성 문제로 세 번째 낙마=앞서 오바마의 최측근으로 불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는 3일 상원의 인준 절차가 진행되기 전 스스로 전격 사퇴했다. 대슐은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 백악관 의료분야 책임자(차르) 자리도 내놨다. 그는 “의회와 국민의 완전한 신뢰 없이 의료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 나는 그럴 만한 지도자가 아니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슐은 2005~2007년 자신의 정치 후원자가 설립한 단체로부터 컨설팅 수입과 무료 리무진 서비스 등을 받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세금 12만8203달러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 장관에 지명된 이후 부랴부랴 이자를 포함한 14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한 사실이 드러나자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대슐은 연방 하원의원 8년, 상원의원 18년 동안 쌓은 화려한 인맥을 바탕으로 막판까지 구명 로비에 나섰던 것으로 보도돼 정치적 생명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대슐이 사퇴하기 수시간 전 백악관 성과관리최고책임자(CPO·Chief Performance Officer)에 임명됐던 낸시 킬퍼 전 재무부 차관보 역시 자신의 탈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는 1995년 가정부에게 돌아갈 실업보상세를 내지 않아 자신의 주택에 946달러의 차압이 들어간 사실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사퇴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고위직에 지명됐다가 중도 하차한 사람은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지명자를 포함해 3명으로 늘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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