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바마는 위험한 경제시각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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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익’과 ‘미 제조업 노동자의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비틀거리는 빅3에 구제금융을 지원한 것은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경기 부양에 들어가는 철강은 반드시 미국산 철강만 쓰도록 못 박은 ‘바이 아메리카’ 조항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우려해온 보호무역 성향이 구체적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새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은 물론, 이미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뜯어고치겠다는 입장이다.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에 방점을 찍었던 부시 전 정부와는 완전히 노선이 다르다.

미국은 중국에도 강도 높은 압박을 시작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중국의 환율 조작이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며 중국을 사실상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했다. 현재 미 의회에는 환율 조작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중국은 곧바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반격에 나섰다. “우리는 국가 목적에 따라 미 국채의 추가 매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미 국채 매입의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물론 중국 위안화의 지나친 저평가는 언젠가는 손봐야 할 세계 경제의 고질병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미·중이 공조는커녕 신경전부터 벌인다면 세계 경제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제 오바마 대통령이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확대 적용하려는 미 의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국내외의 거센 비난과 반발에 밀린 모양새다. ‘바이 아메리카’ 법안이 완전히 철회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보호무역과 미·중의 극한 대립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결국 동반 자살로 이어질 뿐이다. 오바마의 최근 행보는 정권 출범 직후의 탐색전치고는 위험 수위가 너무 높다. 환율문제나 통상마찰은 위협과 보복이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의 테두리 안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 미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계경제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각이다. 자유무역과 국제공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미국을 위한 길이고 세계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