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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터뷰> 세계대학총장협회 거스 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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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밥 돌 공화당 후보는“오늘의 미국은 대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미국에서 지적 생산과 충전이 다름아닌 대학에서 이뤄져왔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적 헤게모니의 원천도 바로 대학이라는 것.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대학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인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대학이 과연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학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이런 문제를 도널드 거스(Donald R.Gerth.70)세계대학총장협회 회장이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총장에게 들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거스 회장은 한국대학총장협회(회장 박재규)초청으로 3일 방한했다.3박4일 일정으로 한국대학총장협회가 주최한'21세기와 새로운 한.미대학교류'라는 주제의 대학발전포럼과 한미우호협회 행사에 참여하고 6일 귀국했다.'학습사회'등 고등교육에 관련된 많은 저서를 낸 교육학자이자 교육행정가인 그에게'학습사회'라는 개념에서부터 화제를 꺼냈다.

-'학습사회'란 무엇인가.

“한 사회를 경제나 정치의 발전 수준에서 평가할 수도 있다.그러나 21세기에는 국민의 지식수준이 경제 및 사회발전의 기초가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학습사회'란 지식의 정도에 의해 사회발전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개념이다.”

-오늘날 대학은 기능적 지식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기능적 지식이 사회발전의 지표가 될 수 있는가.

“오늘날 대학에서 응용과학과 기술이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나 인문학을 경시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학문이 겪는 어려움은 변화하는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그러나 해결의 실마리는'광범위한 기초연구'와'연구의 다양성'에서 찾아질 것이다.”

-이젠 대학도 자본과 연계없이 생존할 수 없다.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공적인 연구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대학과 국가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과거와 달리 이젠 대학도 국가의 공적인 지원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따라서 대학도 기업적 특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그럼에도 연구는 인류의 평화와 휴머니즘 실현에 기여하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대학과 대학의 연구,그리고 인류 전체에 어려움이 직면할 수 있다.이와 관련해 특히 어려운 문제는'학문의 자유'문제다.세계대학총장협회는 아직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제3세계의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주창하고 있다.”

-현재의 대학이 새로운 문명적 전망을 요구하는 21세기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현재는 인류사에서 분수령이다.경제구조 개혁,냉전 종식,글로벌 사회의 출현이 그 징표다.그러나 아직 민족전쟁이나 빈곤 등 전통적인 문제가 온존하고 있다.따라서 이를 모두 아울러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가 출현되어야 한다.그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학문간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그러나 대학의 분업 구조는 대단히 경직돼 창의적 학문 연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전망을 갖기 위해 대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지속적인 교육'이다.대학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사회화하는 결정적 방법은 교육이다.그러나 전통적 학위과정 중심의 교육으로는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없다.사회가 더욱 유연해지는 만큼 연구와 교육의 방식도 유연해져야 한다.졸업생 재교육과 평생교육,원격교육 등 확장된 교육의 개념이 필요하며,지역적.민족적 한계를 넘어서는 인류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는 연구성과가 나타나야 한다.이를 통해 사회 전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그것은 물론 대학이 21세기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세계적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요즘 국내 대학도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개혁.개방을 하고 있다.하지만 이에 대해 선진국을 위한 지식의 재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기우일 것이다.대학개혁의 요구는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다.본인이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대학도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대학은 국가경계 안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그 연구 결과는 인류 보편적이어야 한다.현재 전세계적 변화의 노력이 바로 대학의 이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육의 개혁.개방이 결코 문화적.교육적 제국주의로 이해될 필요는 없다.” 그는“현재의 대학으로 21세기 새로운 전망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덧붙이면서도“지식만이 그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대학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전망을 찾아갈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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